광현호 선상살인 저지른 베트남인, 4일간 운항서…

[헤럴드경제]원양어선 ‘광현 803호’(138t) 베트남 선원 2명은 한국인 선장과 기관장을 살해한 뒤 세이셸군도까지 4일간의 운항에서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선상살인이 발생한 광현호에서 흉기를 든 베트남 선원 V(32), B(32)씨를 차례로 제압한 한국인 항해사 이모(50)씨는 5일 “피의자들은 일을 저질러 놓고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며 “세이셸에 도착하면 집에 간다고 가방을 챙기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피의자들은 세이셸에 입항하면 잡혀간다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며 “학력수준이 높지 않은 이들은 사리분별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고 말했다.

항해사 이씨의 이런 설명은 피의자들이 살인 범죄로 인해 중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고 그에 따라 배가 세이셸까지 4일간 이동하는 동안 추가 범행이나 선박을 탈취해 도주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씨는 살인 피의자들과 4일간 한배에서 동행한 것에 대해 “피의자들이 다른 선원에게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어 같이 못 어울리게 배 앞쪽 창고에 모포를 덮어주고 그 안에서 생활하라고 했다”며 “조타실에서 항상 감시하면서 동태를 주시했는데 보이지 않으면 찾아서 좋은 말로 다시 창고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동조자가 있을까 봐 가급적 선원들을 한곳에 모이지 않게 했고 배를 안전하게 운항해야 하는 항해사의 직무를 다하려고 했다”며 “4일간 피의자들은 큰 동요나 저항없이 잘 지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선상살인 사건이 소통 부재와 권위의식, 비인격적인 대우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했다.

이씨는 “평소 선장이 선원들에게 욕을 많이 했다. 특정인에게 너 왜 일 못하냐고 한 것이 아니라 이름을 잘 못 외우니까 무조건 욕설부터 했다”며 “선원 입장에서는 다 자신한테 그러는 줄 알고 한꺼번에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흉기를 든 베트남 선원 2명을 제압한 이후 살해 이유를 물어보니 ‘선장·기관장 노굿(no good)’이라고 했다”며 “선장과 기관장하고 (베트남 선원)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평소 좋지 않은 관계에서 회식 중 뺨을 때리는 등 말다툼이 있었고, 술을 마셔 이성을 잃은 것도 살인극으로 번진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 사람끼리도 서로 오해하는데 말도 안 통하는 사람끼리 무슨 이야기를 했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피의자들이 ‘문제 선원’은 아니었고 다 열심히 하는 친구였는데 안타깝다”며 “선장 등이 좀 더 선원들을 따뜻하게 해줬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피의자들이 혹시 선장이나 기관장이 죽지 않을 경우 보복을 당할까 봐 그랬는지 너무 지독한 방법으로 살해했다”며 “그들도 피해자일 수 있지만, 법이 정한 죄를 합당하게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한테도 피의자들이 달려들었지만 그건 칼을 뺏으려고 하니까 달려든 것이었지 평소 악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나랑 몸싸움할 정도니까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는 해경 조사과정에서 불거진 피의자의 선박 무단이탈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무단이탈은 다른 선원들이 했다고 지적한 이씨는 “바다에서는 야단치더라도 항구에 와서는 선원들에게 전화도 하고 놀라고 돈도 좀 줘야 하는데 경험 미숙인지, 통제만 하려 했다”며 “다른 배 선원들은 다 내리는데 우리 선원만 안 가면 되나, 그건 무단이탈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항해사 이씨는 권위적인 원양어선 선상 문화가 변해야 이번 같은 안타까운 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씨는 “외국인 선원과 한국인 선원이 그 나라의 간단한 인사나 이름 정도는 불러주며 서로의 문화와 인격을 존중해주고 평소 같이 밥 먹고 담배도 피우며 권위를 탈피해야 한다”며 “좀 더 사정이 나은 한국인 선원들이 옷이나 양말도 주고 평소 친분을 유지한다면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인혐의 베트남 선원 B(32), V(32)씨는 숨진 기관장과는 1년 이상, 조업부진으로 올해 4월 바뀐 선장과는 2개월가량 배를 탔다.

그는 피의자들과 난투극을 벌일 당시 무섭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빨리 제압해서 칼을 뺏어야겠다, 더는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되겠다는 심정뿐이었다”며 “선장이 흉기에 찔린 것 외에 기관장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조차 못 했는데 나중에 선원 숫자를 확인하다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합기도 4단과 태권도 2단의 무술 고수인 이씨는 “예전 중학교 때 합기도와 태권도를 배웠고 대학 다닐 때는 합기도 도장에서 고등학생들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도 했다”고 말했다.

해경은 흉기를 든 피의자를 차례로 제압하고 4일간 배를 안전하게 세이셸군도까지 운항한 공로로 이씨에게 포상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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