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세계에 묻다 ③] 기성 정치에 대한 분노로 제3당 열풍…포퓰리즘의 말로는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지는 이제 영국이 보수당과 노동당 양당 체제가 아니라 10개 정당 체제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3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결과 보수당과 노동당 내부마저 유럽연합(EU) 탈퇴파와 잔류파로 갈라선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체 투표자 가운데 보수당 탈퇴파가 23%로 가장 많았고, 노동당 잔류파가 20.3%, 보수당 잔류파가 14.7%, 영국독립당(UKIP) 탈퇴파가 12.3%, 노동당 탈퇴파가 10.9%였다. 특히 영국독립당은 하원의원 1명을 낸 정당에 불과하지만, 이번 국민투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처럼 기성 엘리트 정치에 신물난 유권자들의 지지를 업고 영국독립당 같은 ‘제3당’이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제3당’이 기존 정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무책임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불과하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수백명의 난민이 몰려드는 사진을 담은 포스터 앞에 선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 대표 [출처=게티이미지]

유럽과 미국에 부는 제3당 열풍=브렉시트 국민투표에 직전인 지난달 19일 이탈리아 지방선거에서 신생 정당 오성운동(M5S)이 압승을 거뒀다. 오성운동은 로마 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을 비롯 4대 주요 도시 중 2곳의 시장을 당선시켰다.

오성운동은 2009년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좌파ㆍ우파라는 기존 정당 체제를 부정하며 창설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공약은 유로존 탈퇴 국민투표 실시, 화이트칼라 범죄나 탈세에 대한 엄중한 처벌, 중소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등이다.

오성운동은 선거에서 좌파, 우파, 중도 유권자 모두를 사로잡았지만 유럽의회에서는 우파와 연대하고 있다. 그릴로 대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민주주의의 교훈’”이라며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와 함께 영국의 조속한 EU 탈퇴를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 역시 과거 군소정당에 불과했지만 반(反) 이민정서를 등에 업고 주요 정당으로 떠올랐다. 국민전선은 2015년 프랑스 지방의회 선거 1차투표에서 28%를 얻으며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르펜 대표는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결선투표까지 진출할 것으로 점쳐진다. 르펜 대표는 대선에서 승리하면 EU 탈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독일에서는 반이민 공약을 내세우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군소정당에서 제3당 지위로 올라섰다.

호주에서도 지난 2일 총선에서 극우 성향 ‘하나의 국가(One Nation)’가 돌풍을 일으켰다. 이 정당은 상원 76석 가운데 3~4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공화당ㆍ민주당 양당 후보가 아닌 대안 후보를 요구하는 유권자들이 늘고 있다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가 역대 최고 비호감 후보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질 스타인 녹색당 대선후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WSJ은 트럼프와 클린턴이 양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후 구글 검색어 가운데 ‘무소속’, ‘제3당’ 등이 인기라고 전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 [출처=게티이미지]

책임지지 않는 권력…브렉시트가 포퓰리즘 정당에 주는 교훈= 유럽의 극우정당들과 ‘포퓰리즘의 대명사’ 트럼프의 공통점은 글로벌 경제에서 소외됐다고 느끼는 저소득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극우정당들과 트럼프는 이민자 관련 자극적인 발언 등으로 유권자들의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

특히 영국독립당은 국민투표 전 수백명의 이민자가 줄 서있는 모습을 담은 포스터를 내세워 대중들을 선동했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 대표는 인구 7600만명에 달하는 터키가 EU에 가입해 이민자가 영국에 물밀듯 쏟아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패라지 대표는 국민투표 승리 후 돌연 말을 바꿔 빈축을 샀다. 그는 영국이 EU에 내는 분담금을 국민건강서비스(NHS)로 돌리겠다고 해놓고, 이를 실현할 수 있을지 보장할 수 없다고 잡아뗐다. 그러더니 지난 4일 패라지 대표는 돌연 대표직에서 사임한다고 밝혔다. 브렉시트 결정으로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어놓고, 정작 국민투표 전 브렉시트 진영을 이끌었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패라지 대표 모두 사퇴한 것이다.

가디언은 이를 두고 1930년대 스탠리 볼드윈 전 영국총리가 했던 말이 2016년에도 적용된다고 꼬집었다. 볼드윈 전 총리는 당시 언론을 가리켜 “책임없는 권력”이라고 비난했다.

당초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에는 브렉시트 진영의 승리로 극우정당들이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영국 애스턴대 프랑스정치학 교수인 제임스 쉴즈는 “브렉시트는 르펜 대표를 위한 선물”이라며 “소수 의견, 극단주의로 비춰졌던 공약이 영국에서 과반수 유권자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포퓰리즘 정당에 득보다 실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유권자들은 브렉시트가 글로벌 경제에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왔는지 직접 눈으로 보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네덜란드에서 극우정당 자유당(PVV)이 발의한 ‘EU 탈퇴 국민투표 개최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기도 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브렉시트는 유럽의 종말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이 될 것”이라며 “포퓰리스트들은 심각한 결과를 깨닫고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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