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혼돈의 시대…특급 소방수로 나선 여성들

[헤럴드경제=이수민 기자] “테이블을 치우고, 바닥을 닦고, 창문을 열고, 담배를 갖다 버리기 위해 언제나 여성이 나타났다. 그리고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 최초의 여성 총리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는 총선 승리를 두고 아이슬란드 시의 일부를 인용했다. 혼돈의 시기, 국민들이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 줄 인물로 여성을 지목했다는 의미다.

혼돈의 시대에 여성이 소방수로 나서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브렉시트 이후 질서를 모색해야 하는 짐을 짊어진 것도 여성이다. 테레사 메이 영국 내무장관과 안드레아 레드섬 에너지부 차관 둘 중 누가 영국의 차기 총리가 되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차기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어쩔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영국민들에게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청사진을 그려줘야 한다. 


유럽 대륙에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브렉시트로 무너진 유럽을 추스려야 한다. 2차 대전 후 독일의 야욕을 묶기 위해 탄생한 유럽연합(EU)의 재건이 공교롭게 독일 수장의 손에 달리는 아이러니도 있다. 그러다 보니 유럽은 물론 독일 내부에서조차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시선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메르켈 총리가 뫼비우스 띠처럼 얽힌 난민문제와 영국과의 협상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 나가 길 기대하고 있다.


막말과 기행으로 세계 지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의 백악관 행을 저지해야 하는 것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취임도 여성 지도자 바람에 힘을 실어줬다. 차기 유엔사무총장 자리 또한 여성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다. 역대 총장을 모두 남성이 맡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여성이 사무총장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불가리아 출신인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 메르켈 총리,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후보군이다.

혼돈의 시대에 왜 세계는 여성을 소방수로 내세우려 하는 것일까. 이유는 다양하다. 이들 이외에 마땅한 인물이 없어서라는 궁색한 이유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변화와 전환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인식이 ‘우먼 파워’에 불을 지피고 있다고 진단한다. 


독일 일간 디 벨트는 독일 마라 델리우스 기자는 이와 관련 “테레사 메이와 앙겔라 메르켈,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새롭게 열리는 여성정치(femokratie) 시대를 대표한다. 이들은 남성들이 어지럽힌 것을 치우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여성 지도자는 현재까지와는 다른 문제 해결 방식을 취할 것이라는 생각도 여풍(女風)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영국 상원의 앤 젠킨 케닝턴 남작 부인은 “혼란스러울 때, 사람들은 여성이 더 합리적이고, 강하지 않게 문제에 접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협력을 잘하고, 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이라 느낀다”고 말했다. 남성들로 대변되는 추진력 있는 리더십을 지나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여성 지도자의 부상을 긍정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여성 정치인들도 각각의 개성을 가진 다른 사람일 뿐인데 성별을 기준으로 한 집단처럼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남녀 편가르기 식의 문제가 있다는 설명이다. 메이와 레드섬만 비교해도 다르다는 얘기도 있다.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최근 트위터에 “메이와 리드섬은 모두 여성이지만, 꽤 다른 시각을 지니고 있다”고 쓰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름을 날린 여성 정치인들의 이미지가 대체로 하나로 굳어져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메르켈과 스터전의 유사성을 지적한 디 벨트는 “성공한 ‘여성 파워’ 정치인들에게는 천편일률적인 형질이 있다”고 전했다. 짧은 머리에 강단있는 여성의 모습은 메르켈, 힐러리, 스터전 등 유명 여성 정치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이미지다.

여성이기에 주목받는 세태가 아직 중심으로 떠오르지 못한 여성들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아쉬움도 여전하다. 메이와 리드섬이 여-여 구도로 주목받지만 수많은 남-남 구도에 대해서는 논해지는 일이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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