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잡는 직장상사 ①] 직장인 10명 중 3명 “상사 자체가 압박”…2명은 “맞았다”

-직장 내 폭언, 폭력 사건 잇따라…“남의 일 아니다” 하소연 넘쳐

-주먹구구식 업무 프로세스, 상명하복식 업무 문화 폐해 터져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잘 하라면서 많이 때린다. 매일 욕설을 한다. 죽고 싶다,”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남부지검의 젊은 검사가 친구들에게 보낸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글의 일부다. 상사인 부장검사로부터 일상적으로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던 이 젊은 검사는 평소 상사 때문에 괴롭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현직 검사가 포함된 그의 사법연수원 동기 700여명은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사상초유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검찰청은 결국 진상조사에 나섰다. 

직장인들의 상사 압박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2명은 상사로부터 맞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관련 이미지.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검은 한 식품회사 영업점 직원을 때려 숨지게 한 같은 회사 본사 직원들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상사인 자신들에게 버릇없이 대한다며 주먹으로 영업점 직원의 머리와 얼굴을 수차례 때려 뇌출혈도 사망하게 했다.

상사의 폭행과 폭언으로 고통을 호소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상명하복 등의 후진적 기업문화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직장 내 폭력은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2819명을 상대로 조사한데 따르면 15.3%가 직장 내에서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대부분(68.9% ) 업무 중에 당했으며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주로 상사(72.9%)였다고 답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78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9%의 응답자가 ‘직장상사’가 가장 큰 스트레스 대상이라고 답했다. ‘원만하지 않은 직장 내 인간관계(20%)’, ‘과도한 업무량(19%)’ 등 다른 요인보다 상사에 대한 부담이 가장 컸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엔 직장 상사의 폭언, 폭력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고, 여성의 경우 성추행도 비일비재하다는 경험담이 넘쳐난다.

당장 인터넷 검색창에 ‘직장상사’를 검색하면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블로그’ 섹션엔 ‘직장상사 꼴불견 베스트7’, ‘직장상사 스트레스 줄이려면’, ‘직장상사 스트레스 복수라도 해야 할까?’ 같은 글이 이어지며, ‘지식인’이나 카페 ‘게시판’에 올라오는 질문들은 “직장상사 때문에 회사에 가기 너무 싫다.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 “말도 안되는 직장상사의 요구를 그냥 들어줘야 하나”, “상사의 폭언과 협박에 회사를 퇴직하려는데 고소해도 될까?”, “1년간 매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폭언을 들었다. 머리가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해 죽고 싶을 정도다. 오늘은 멱살잡이까지 했다”는 등의 하소연으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이런 분위기는 단순히 평사원들만의 푸념이 아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지난해 6월부터 9개월간 국내기업 100개사, 임직원 4만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작성한 ‘한국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부하직원과 소통하지 못하고 불합리한 직장상사로 인한 조직 문화는 일반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비과학적 업무 프로세스와 상명하복 불통 문화가 만연해 있다. 한마디로 아무리 말이 안되도 상사가 까라면 까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내기업 임원으로 일한 외국인 T 씨는 “한국기업의 임원실은 마치 엄숙한 장례식장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임원 앞에서 정자세로 서서 불명확하고 불합리한 업무지시에 이유도 묻지 못하고, 거부도 하지 못하면서 고개만 끄덕이는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기업 재직하는 A 씨는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지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결재라인 밟을 때마다 보고서 방향이 뒤집히는 일이 허다하다”며 불합리한 업무 프로세스로 인한 스트레스를 토로했다.

불합리한 업무 프로세스와 상명하복식 문화로 인해 한국 직장인들에겐 야근이 일상화돼 있다는 게 보고서의 진단이다. 한국 직장인은 주5일 기준 평균 2.3일을 야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퇴근 전 갑작스런 업무지시나 불명확한 업무분장으로 한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경우, 업무지시 과정에서 배경이나 취지에 대한 소통이 부족해 일이 몇 갑절 늘어나 야근하는 사례 등이 수시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런 직장 문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상사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직원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조직 발전에도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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