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신화의 밑천 ‘이해진 의장의 백지도전과 실패’

- 라인 상장 주역에게 오너보다 두배 많은 스톡옵션 부여
- 헌신한 직원들에 합당한 보상체계 갖춰야
- 경영권은 지분 아닌 실력으로 지키는 것
- 일 못하면 오너도 잘릴 수 있어

2000년 11월 외국기업의 무덤으로 악명 높은 일본에 조그만 한국벤처기업이 진출했다. 설립된지 2년이 막 지나 국내 인터넷포털시장에서도 다음과 야후에 이어 3위에 머물던 곳이었다. 당시 자본금 1억엔을 들고 일본검색시장에 발을 내디뎠던 신생기업은 바로 네이버다.

결과는 참담했다. 줄줄이 내놓은 검색서비스는 야후와 구글 앞에서 쓴맛만 봤다. 그새 법인이름도 서너차례 바뀌었다. 자본금은 바닥을 드러냈다. 네이버 내부에서도 포기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반전은 예기치못한 재난에서 시작됐다. 사업철수 수순을 밟던 2011년 봄 동일본 대지진이 터진 와중에 메신저 ‘라인’이 개발됐다.

네이버의 해외 공략기에는 실패란 단어가 가득하다. 네이버는 17년동안 미국과 중국, 일본 시장의 문을 끊임없이 두들겼다. 성공보다는 좌절이 더 익숙한 시절이었다. 해외진출을 진두지휘하던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49) 의장은 “뭘 해도 안 되고 늘 꼴찌만 하던 시기”라고 되짚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라인의 성공이 찾아왔다. 이 의장은 성공비결로 ‘백지도전’과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을 꼽았다. 라인이 일본과 뉴욕 증시에 동시상장된 지난 15일 강원도 춘천 데이터센터 ‘각’에 등장한 그는 ‘성공’보다는 ‘도전’과 ‘절박함’을 더 강조했다. 이 의장은 제2의 라인신화를 위해 이미 또다른 출발선에 서있었다. 

▶라인의 성공 밑천은 백지도전과 실패 = 이 의장에게 글로벌 서비스의 성공은 숙원이다. 이 의장은 사업초기부터 전세계에서 통하지않은 인터넷서비스는 의미없다는 지론을 강조했다. 이의장의 해외진출은 17년전부터 시도됐다. 일본에서는 실패를 두번 맛봤다. 이 의장은 지난 2000년 일본의 글로벌 진출 교두보로 삼기 위해 네이버 재팬을 설립했다. 검색 서비스로 승부를 걸었지만 힘도 못 쓴채 결국 2005년 철수했다. 일본에서 고배를 마신 네이버는 2006년 검색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신생 벤처인 ‘첫눈’을 인수했다.

네이버는 2007년 11월 일본시장에 재도전했다. 이 의장은 2008년 검색센터장을 맡고 있던 신중호 라인 최고글로벌경영자(CGO)를 일본에 보냈다.

당시 이 의장은 네이버에 막 합류한 신CGO와 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고 한다. 이 의장은 신CGO에게 “해외시장에서 성공한 국내 인터넷 서비스가 없는데, 네이버는 글로벌기업을 꿈꾸는 기업이 돼야한다”면서 “일개 기업의 임무가 아니라 국가대표로서 나가 1번 타자로 성공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의장이 제시한 방법론은 ‘백지도전’이다. 이 의장은 일본으로 떠나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잊고 백지에서 시작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을 다 잊고 일본에 가면 일본 사람들의 말을 듣고, 문화를 배우고, 일본 사람들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달라”며 “글로벌 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싸울수 없기 때문에 현지화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인 성공 비결인 ‘컬처라이제이션(culturalizationㆍ문화화)‘의 근간을 이루는 말이다.

2007년부터 이어진 재도전은 6년만에 다시 실패로 끝났다. 이 의장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일본 사용자들은 꿈쩍하지도 않더라”며“일본에서 서비스를 하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심정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 의장은 10년동안 매달 일본으로 건너가 상주하다시피하면서 손수 사업을 챙겼다. 일본 법인 직원들의 고충을 들으면서 해 뜨는 것을 본 날도 숱하게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 의장이 지인들에게 “성공하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늘 되뇌이던 때이기도 하다.

기회는 막다른 골목에서 찾아왔다. 철수 준비를 하던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새로운 사업기회를 잡았다. 대지진으로 모든 통신이 두절됐지만 인터넷 서비스가 사람들의 연락수단이 되는 상황을 목격한 것이다. 개발자들은 여진의 공포 속에서도 라인 개발에 집중했다. 직원들 생명과 안전도 담보되지 않던 순간이었다. 이 의장은 현지에서 불안에 떨던 직원들과 밤을 새우며 라인을 완성했다. 가족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낸 네이버재팬 직원들이 회사에서 함께 숙식하며 두려움 속에 라인을 개발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의장이 “라인 서비스에는 직원들의 절박함과 눈물이 배어있다”고 늘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기 속에서 탄생한 서비스는 편안한 곳에서 만들어진 서비스와 성장세가 달랐다. 그해 6월 시작된 라인 서비스는 대박을 터뜨렸다. 라인은 대지진 이후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았다. 서비스 출시 2년 만에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이용자가 3억명을 돌파했다. 지난 15일에는 도쿄와 뉴욕증시에도 성공적으로 입성했다. 이날 이 의장은 “꿈처럼 현실감을 못 느끼겠다”면서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꼴찌가 돌아가 뭘해도 안되는 상태로 되는 건 아닐까 두렵다”고 소회를 밝혔다.

▶직원들의 헌신과 노력에 통큰 보상= 상장을 앞둔 세간의 화제는 ‘라인신화’의 주역들이 받는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이었다. 라인 임직원 중 가장 많은 스톡옵션을 부여받은 인물은 이 의장이 아니라 신 CGO다. 그는 라인을 개발해 라인이 일본과 인도네시아, 태국, 대만 등에 안착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라인이 도쿄증권거래소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신 CGO가 보유한 라인 스톡옵션은 1026만4500주로다. 공모가(3300엔)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389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반면 이 의장이 보유한 스톡옵션은 신 CGO의 절반 수준인 557만2000주다. 2회에 걸쳐 스톡옵션을 받은 신 CGO와 달리 이 의장은 라인 출시 당시 1회만 스톡옵션을 받았다.

여기에는 이 의장의 경영철학이 담겨있다. 이 의장은 “사업 초기부터 위험을 짊어지고 모든 걸 바쳐 일한 사람들의 공로를 평가해 보상할수 있는 체계는 매우 중요하다”며 “신 CGO가 라인 성공을 위해 수년간 어려움을 감내한것을 감안하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터넷 기업은 결국 사람이 전부“라면서 “장기적으로 사업이 더 잘 될 수 있도록 계속 열정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에게 의미있는 보상이 이뤄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 꼭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장은 대규모 스톡 옵션을 받은 데 대해서도 “지난 10여년간 매달 일본을 오가며 해외 진출과 신사업을 추진한 공로를 평가위원회에서 인정받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일못하면 오너도 잘릴 수 있다 = 라인의 상장소식을 전하는 자리에서 이 의장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절박함’과 ’고민’이다. 그는 “사업을 시작한 지 1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침마다 해외 신기술, 서비스 출시를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IT기술이 탄생하는 모바일과 인터넷에서는 국경과 시차가 없는 만큼 사용자들이 새로운 서비스로 순식간에 옮겨가기 때문이다.

이 의장은 “네이버가 한국에서 1등을 하고 있지만, 구글과 페이스북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회사”라면서 “‘매년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의장의 다음 도전은 북미와 유럽시장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은 글로벌기업과 경쟁하려면 새로운 브랜드로 반드시 도전해야 하는 꿈의 시장”이라며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기술 개발에 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라인의 성공이 또다른 신화의 디딤돌이 될것으로 확신했다. 그는 “골퍼 박세리의 성공이 ‘박세리 키즈’를 양산했듯이, 라인의 성공이 ‘라인 키즈’들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내가 실패하더라도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제2, 제3의 라인이 북미와 유럽시장에 도전해 성공할 수 있도록 디딤돌 구실을 하겠다”고 말했다.

성공신화를 계속 만들어가는 것으로 회사를 이끌어가고 싶다는 이 의장. 그는 “경영권은 능력과 열정으로 지키는 것이지 내가 보유한 지분이나 다른 사람들의 돈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다”면서 “일을 못한다면 나부터 잘려야한다”고 말했다.

춘천=권도경기자/ k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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