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도약이냐 슬럼프냐…‘독한 귀공자’ 정영식의 두길

한국 탁구 대표팀의 올림픽 도전이 끝났습니다. 첫 노메달로 끝내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현재 세계 탁구는 ‘원톱’ 중국 밑으로 한국 일본 독일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엇비슷한 2위 국가들이 즐비한 형국입니다. ‘은메달’이면 사실상 금메달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어쨌든 메달을 하나도 수확하지 못한 건 참 아쉽습니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습니다. 중국을 상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많은 분들이 탁구의 재미를 알게 된 것이죠.

그 중 남자단식 16강 정영식-마롱 경기는 승패를 떠나 정말 명승부였습니다. 정영식이 세계 최강을 상대로 먼저 두세트를 따냈지만 아쉽게도 역전패한 경기입니다. 직접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승부를 떠나 탁구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정영식은 귀공자 같은 외모와는 달리 아주 독한 선수입니다. 별명이 ‘연습벌레’죠.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이 연습벌레는 선수생활 중 가장 많은 연습을 소화했습니다. 만리장성을 넘어 금메달에 한번 도전하겠다는 일념으로 그 엄청난 훈련을 치러낸 겁니다. 이는 탁구계에서는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인도, 탁구인들도 내심 대이변을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마롱과의 경기도 초반에는 그렇게 진행됐죠.

하지만 마롱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냉정하게 프로페셔널의 입장에서 진단하면 그게 실력이고,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롱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완벽한 세계 1위로 ‘한 번 지면 끝’인 개인전에서 그가 갖는 부담감은 어쩌면 정영식보다 더 컸을 겁니다. 여기에 상대의 초반 공세에 먼저 두 세트를 내줬으니, 얼마나 흔들렸겠습니까. 그걸 이겨낸 겁니다. 그러니 세계 1위인 것이죠. 정영식의 패기를 칭찬함과 동시에 마롱의 이런 자세도 우리가 꼭 배워야합니다. 더욱 집중해 최고의 기술로 경기를 뒤집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영식의 다음입니다.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마롱과의 경기를 보약으로 삼아 한 계단 더 성장하거나, 아니면 이번을 탁구인생의 꼭지점으로 삼아버리고 마는 것이죠.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안타깝게도 후자의 길을 걷는 선수들도 제법 많습니다. 반드시 정영식이 전자의 루트를 밟아야 한다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리우올림픽 탁구 경기에서 연이어 중국 선수를 맞아 선전을 펼친 정영식 선수. 리우=박해묵기자/mook@heraldcorp.com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중학생이던 만 16살에 국가대표 선발돼 처음 국제대회에 나갔는데 하필이면 첫 상대가 북한선수였습니다. 당시는 남북대립이 워낙 심해 부담이 컸습니다. 저는 분전했지만 아쉽게 졌습니다. 충격이 컸고, 이후 슬럼프에 시달렸습니다. 다행히도 나이가 어렸던 까닭에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열여덟살에 아시안게임 우승, 스무살에 올림픽 금메달을 땄으니 참 운이 좋았습니다.

정영식도 만 24살입니다. 아직 선수생활이 많이 남았습니다. 앞으로 3번까지도 올림픽에 더 도전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출전한 이번 올림픽의 경험이 정영식에게 보약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번 올림픽을 준비한 마음으로 계속 운동하면 분명 세계 제패의 기회가 올 것입니다. 다행히도 정영식의 마인드가 워낙 긍정적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탁구 국가대표 선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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