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에 멍드는 한국 사회 ①] “합의금 타내려고…” 성범죄 허점 파고드는 ‘무고의 유혹’

-올 상반기에만 4633건 무고죄 신고…성범죄 둘러싼 무고죄 급증세

-전문가들 “무고죄 휘말릴 경우 무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 수집 중요”

[헤럴드경제=양대근ㆍ고도예 기자] #. 전주지법은 지난 6일 “성폭행을 당했다”며 카페 손님을 허위로 신고한 주인 A(49ㆍ여) 씨의 무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6월 “손님 B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으니 처벌해 달라”고 주장하며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상황이 촬영된 카페 내 CCTV의 동영상 및 카페 종업원 진술 등의 증거자료에 비춰 A씨가 성폭행을 당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A씨에 대한 신체검사 과정에서도 멍이 들거나 긁힌 흔적 등의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박모(34) 씨와 김모(35) 씨는 재력가인 또다른 지인 C씨를 성폭행범으로 몰아서 합의금을 뜯어내기로 계획했다. 지난 3월 자신의 사촌동생이 운영하는 노래방에 C씨를 유인해 여성 2명과 성관계를 맺게 한 뒤 성폭행에 대한 합의금 명목으로 5000만원을 요구했다. C씨가 이를 거절하자 경찰에 성폭행범으로 고소했다. 하지만 사법당국은 두 사람을 수상하다고 판단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고 결국 무고와 공동공갈 혐의를 밝혀내 기소했다. 법원은 박씨와 김씨에게 각각 징역 2년 6월과 징역 2년의 중형을 내렸다.

[사진=성범죄를 엄하게 처벌하는 최근 추세를 역이용해 합의금 등의 목적으로 상대방을 무고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성범죄를 엄하게 처벌하는 최근 추세를 역이용해 합의금 등의 목적으로 상대방을 무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최근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박유천ㆍ이진욱 씨 등 유명 연예인들도 경찰 수사 결과 무고죄로 피해를 당한 것으로 드러나 무고죄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무고죄 관련 형법 156조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대 10년의 징역형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무고죄에 대한 형량이 대부분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오히려 상대방의 약점 등을 교묘히 파고들어 무고를 시도하는 일은 더 늘어나고 있다.

11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무고 사건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3년 8816건에서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 1만156건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도 벌써 4633건이 접수됐다. 반면 무고 사건 불기소율은 2012년 60.5%에서 지난해 69.2%로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무고 사건 피의자가 무혐의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비율 역시 늘고 있다. 2011년 56.1%로 절반이 조금 넘었던 무고 사건 불기소율은 2012년 60.5%, 2013년 62.4%, 2014년 64.1%를 거쳐 지난해 69.2%를 기록했다. 무고 사건 10건 중 7건이 법원으로 가지 않고 수사기관 선에서 그냥 마무리된 셈이다.

비슷한 법체계를 가진 일본과 비교해도 이 같은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2007년 기준으로 일본에서 1년 동안 무고죄로 기소된 사람은 10명에 불과한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은 무려 2171명에 달했다. 기소 인원만 비교해도 217배가 차이나는 셈이다.

무고죄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처벌이 약한 점이 꼽힌다.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팀이 지난 2009년 7월부터 2010년 말까지 무고죄로 유죄 선고를 받은 624명을 조사한 결과 집행유예가 406명(65.1%)으로 가장 많았고 벌금형(134명·21.5%)이 뒤를 이었다. 반면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80명(12.8%)에 그쳤다. 

[사진=성범죄를 엄하게 처벌하는 최근 추세를 역이용해 합의금 등의 목적으로 상대방을 무고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성범죄의 경우 입증이 쉽지 않은 점이 무고죄가 늘어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의 경우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전후 상황이나 피해 당시의 상황을 반복해서 계속 캐묻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는데 이 같은 점을 악용해 무고가 이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스마트폰 보급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의 발달로 어떤 사건에 대한 사회적 파급력이 커진 것도 무고죄 확산에 일조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고 (성범죄의) 유죄가 인정되면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일단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무고죄로 신고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더쌤의 김광삼 대표변호사는 “무고죄 사건에 휘말릴 경우 아무리 결백하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오해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며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신속하게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들은 성범죄 사건에서 무고죄를 광범위하게 적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성폭행 사건에서는 피해를 명백하게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가해자가 무혐의를 받기 십상”이라면서 “증거가 불충분해 성폭행을 명백히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무혐의가 나오면 피해여성이 오히려 무고죄로 더 큰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세밀하게 접근해서 억울한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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