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롱비치항 하역 재개…물류대란 ‘끝 아닌 시작’

한진 그리스, 美법원 ‘스테이오더’ 승인 후 하역비 16억원 내고 하역
빈 컨테이너는 아무도 안 받고 철도·트럭 회사는 수송 거부…’물류난맥’은 답보상태 

(롱비치<미국 캘리포니아주>=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시에서 남쪽으로 약 28마일(약 45㎞) 떨어진 롱비치 항구.

오전 10시(한국시간 11일 오전 2시) 무렵 한진 그리스호 위에 설치된 컨테이너 하역 크레인의 도르래가 서서히 움직였다. 배에 쌓인 컨테이너를 들어 올려 지상으로 내리는 하역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 소속 선박의 미국 항구 하역 작업이 열흘 만에 재개됐다. 지난달 31일 한진 몬테비데오호 하역을 끝으로 한진해운 선박 4척은 압류를 우려해 항구에 접안하지 못하고 인근 해상을 떠돌았다.

그러다가 뉴저지 주 뉴어크 파산법원의 존 셔우드 판사가 채권자에게서 자산 압류를 막아달라는 한진해운의 ‘스테이오더’(압류금지명령·임시보호명령) 신청을 9일 승인하면서 항구에 접안할 돌파구가 열렸다.

미국 롱비치 항에서 10일 만에 하역 재개한 한진해운

미국 롱비치 항에서 10일 만에 하역 재개한 한진해운 한진 그리스호가 10일(현지시간) 미국 롱비치
항에 화물을 하역하고 있다.  (롱비치=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지난달 20일 부산항을 떠나 지난달 말 롱비치 항구 근처에 도착했으나 인근에서 맴돌던 한진 그리스호는 미리 준비한 하역비 150만 달러(16억5천900만 원)를 롱비치 항만 터미널에 내고 예정시간보다 2시간 늦은 이날 오전 7시께 한진해운 전용 터미널에 접안했다.

배에 탄 21명의 선원은 승선 21일 만에야 육지를 밟았다. 약 2시간의 통관·검역 절차를 거친 뒤 컨테이너가 하나씩 지상으로 내려왔다. 배 근처에서 대기하던 트럭이 컨테이너를 차례로 싣고 어딘가로 떠났다.

하역한 한진해운 화물을 싣고 떠나는 트럭

하역한 한진해운 화물을 싣고 떠나는 트럭 미국 롱비치 항구에 10일(현지시간) 하역한 한진해
운 화물을 싣고 트럭이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롱비치=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롱비치 항만 노조의 사전 협조를 구하지 못한 탓에 한진해운 전용 터미널 출입 취재는 제한됐다. 한진 그리스가 접안한 반대편 항만 시설에서만 촬영할 수 있었다.

이날 한진 그리스가 롱비치 항구에 하역할 컨테이너는 4천490개. 크레인 5대가 1개 조로 움직이지만, 이날 오전엔 2대만 작업에 배치됐다.

크레인 1대가 8시간 동안 내리는 컨테이너의 양은 240개. 오후 늦게부터 크레인 5대가 총동원되면 쉼 없이 컨테이너를 내려야 한다. 물량의 대부분은 삼성과 LG의 물건이다.

하역을 마치면 한진 그리스호는 2차 하역을 하러 캘리포니아 주 북쪽 오클랜드 항구로 떠난다.

미국, 일본, 영국 등 3개 나라가 스테이오더를 승인한 가운데 13일 한진 보스턴호와 한진 그디니아호를 포함해 4척의 한진해운 선박이 순차적으로 롱비치 항구에 더 들어올 계획이다.

취재진과 함께 하역 작업을 지켜보던 한진해운의 한 관계자는 “한진 그리스호와 같은 선박은 보통 롱비치 항구에 입항하면 약 8천 개의 컨테이너를 하역하고 선적했다”고 전했다. 한진해운은 하역·선적비만 약 350만 달러(38억7천100만 원)를 롱비치 터미널에 냈다.

그러나 법정관리 신청 후 한진해운에 물량 선적을 신청하는 화주(貨主)는 없다. 이를 반영하듯 물건을 내리고 남은 빈 컨테이너가 한진 그리스호 옆에 켜켜이 쌓였다.

하역 대기 중인 한진 그리스호

하역 대기 중인 한진 그리스호 한진 그리스호가 10일(현지시간) 미국 롱비치 항구에서 하역을
대기하고 있다. 이날 컨테이너 4천490개를 내릴 예정이다. (롱비치=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한진해운이 미국 내 컨테이너 하역을 재개했지만, 물류대란은 정작 지금부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물류(物流)라는 말에서 보듯 물품의 유통이 여전히 꽉 막힌 상태이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문 물류업계 특성상 어느 것 하나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한진해운에서 돈을 떼일 것을 우려한 미국 철도, 트럭 회사들은 법정관리 신청 소식을 접한 뒤 곧바로 한진해운 물량을 내륙으로 수송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컨테이너를 트럭에 싣는 바퀴 달린 육상수송장비인 섀시(Chassis) 운영업자들도 돈을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한진해운 화물 수송을 거부한다.

한진해운이 이 업자들과 꼬인 매듭을 풀지 못하면 물류대란은 더욱 크게 확산할 전망이다. 컨테이너 하역은 물류의 끝이 아닌 시작이다.

업계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롱비치에 들어온 한진해운 물량의 3분의 2는 로스앤젤레스 인근으로, 나머지 3분의 1은 일리노이 주 시카고나 테네시 주 등 중부 내륙으로 향한다”면서 “멀리 가는 물건의 경우 트럭보다 기차 수송 요금이 약 10분의 1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에 물류대란을 최소화하려면 한진해운은 철도회사와 운송비 협상을 빨리 매듭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진해운 소유의 빈 컨테이너의 처리도 골칫거리다. 물건을 선박에서 하역하고 선적하는 일로 돈을 버는 항만 터미널 측은 쓸데없이 공간만 차지하는 한진해운의 빈 컨테이너를 화주에게서 돌려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 컨테이너를 돌려주지 못하는 화주도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몰라 울상을 짓는다.

누군가가 돈을 대 빈 컨테이너를 쌓아둘 공간을 마련해야 하나 물주를 자처하는 이는 없다.  또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화주인 삼성전자는 자체 트럭 회사와의 계약으로 한진 그리스에 선적된 컨테이너 200개를 11일 롱비치 항구에서 반출해 계약 업체에 납품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한진해운에 운송비를 모두 냈지만, 트럭 회사의 거부로 화물이 항구에 묶인 터라 울며 겨자 먹기로 이중의 돈을 지불하고 또 다른 트럭 업체와 계약해 물건을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트럭 업체 역시 물건 수송 후 빈 컨테이너 처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운송에 나설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삼성전자의 납품 일정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를 대표해 롱비치 항구로 달려온 변재영 주미 한국대사관 해양수산관은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한진해운과 협의해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정부가 하역비와 관련한 긴급 자금을 확보하고, 한진해운을 대신할 대체 선박 마련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롱비치 항구에 접안한 한진 그리스호

미국 롱비치 항구에 접안한 한진 그리스호  한진해운 소속 한진 그리스호가 10일(현지시간) 물건
하역을 위해 미국 롱비치 항구에 접안했다. (롱비치=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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