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미친 지도꾼’…비운의 인생 김정호

차승원 주연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화제

그냥 자연 풍광만을 담은 사진은 밋밋할 뿐이다. 자칫 달력 그림이나 컴퓨터 배경화면처럼, 아름답고 비현실적인데 재미는 없는 풍경으로 남아버리고 만다. 그런데 사람이 앵글 안에 들어오면 사진의 생동감이 살아난다. 7일 개봉한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감독 강우석)의 수려한 산수화에 들어가 있는 김정호가 그런 역할이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시작은 한 폭의 산수화를 그리는 것처럼 한반도 최남단 마라도부터 최북단 백두산까지, 봄에서 겨울이 되도록 뚜벅뚜벅 걸어가는 김정호의 뒷모습을 좇는다. 그는 조선후기 세로 6.7m, 가로 3.8m의 거대한 조선전도를 그리고 목판으로 제작해 백성들과 나누려 했던 사람이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스틸컷.

한양 저잣거리에는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하고 3년 만에 돌아온 김정호(차승원)를 반기는 장사치들로 가득하다. 별명은 ‘지도쟁이’, 만나는 사람마다 “죽은 줄 알았잖우”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훌쩍 커버린 딸 순실(남지현) 얼굴은 못 알아봐 딸에게 섭섭함을 사지만, 지도 새기려고 만들어 놓은 목판들은 내 새끼처럼 살핀다.

지도를 목판으로 옮기면서 잠시 정착한 일상을 보내던 김정호는 뜻하지 않게 권력의 표적이 되고 만다. 어린 고종 대신 섭정에 나선 흥선대원군(유준상)과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일가의 권력 암투에 ‘지도’가 등장한 것. “지도는 국가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흥선대원군과 “흥선대원군이 지도를 가지면 전국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안동 김씨 가문이 충돌한다. 서로 김정호를 위협하며 목판을 내놓을 것을 강요하지만 그는 “목판으로 만들어 지도를 많이 찍을 수 있 도록 백성들에게 배포하려 했다”며 맞선다.

박범신 작가의 소설 ‘고산자’가 영화의 원작이 됐다. 김정호는 가장 위대한 지도를 남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은 거의 없다. 양반이 아닌 중인이라는 신분 탓에 출생과 사망 연도마저 불분명하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가족이나 지인 등의 증언으로 재구성될 뿐이었다.

소설은 여기에 살을 붙여 백성을 위해 목판본 지도를 만든 위대한 인물로 김정호를 그려냈다. 박범신 작가는 “완전한 민주화를 꿈꿨던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하기도 했다.

역사적 인물을 재해석한 영화는 언제나 역사왜곡 논쟁이라는 암초를 피해가기 어렵다. 강우석 감독은 “김정호 영화를 만들기로 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이 ‘식민사관’이었다”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김정호는 ‘위대한 지도를 그렸음에도 이를 알아주지 않는 조선 양반 권력 때문에 비운한 삶을 보낸 인물’로 평가됐고 해방 후에도 이같은 역사관과 교육이 이어져 왔다. 강 감독은 “우려했지만 조사하다 보니 백성을 위해 지도를 만든 사람, 지도에 미친 지도꾼이라는 한 가지 큰 줄기가 나오더라”라며 “거기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정호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최초다. 아직 신분제가 공고했던 시절 목판으로 지도를 대량생산하려던 그의 철학과 시도는 충분히 극적이고 영화화 될 매력이 충분하다. 추석 연휴, 영화관의 큰 스크린에서 한반도 곳곳의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강 감독은 “CG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지만 전부 다 찾아가고 계절을 기다려가며 찍은 풍경들”이라고 말했다.

‘투캅스’, ‘공공의 적’ 등에서 보여줬던 강우석 감독 식 유머도 살아있다. 다만 영화의 곁가지가 다소 많이 달려있는 느낌이다. 큰 줄기와 멀리 떨어져 있는 천주교 박해 에피소드를 조금 길게 늘여놓은 점이 아쉽다.

이세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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