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산자’ 강우석 감독, “새로움에 대한 갈증, 사극으로 풀어…그래도 다음엔 코미디”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지금의 지도야 흔하지만, 그 시대에 지도는 권력이었겠더라고. 지금도 내비게이션 있는 사람하고 없는 사람은 말도 안 되게 다르잖아요.”

역사 속 김정호가 ‘지도에 미친 지도꾼’이었다면, 강우석 감독(56)은 그런 ‘지도꾼에 꽂힌 이야기꾼’이다. 조선 후기 지리학자이자, 실용적이고도 정교한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를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스크린에 옮겼다. 지난 7일 개봉한 ‘고산자, 대동여지도’다. 

[7일 개봉한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 윤병찬 기자/[email protected]]

“옛날 사람들이 길도 제대로 안 난 곳을 갈 때, 얼마나 많이 죽고 다쳤겠어요. 그런 권력 같은 지도를 목판으로 만들어서 찍어 백성에게 나눠주려고 했던 사람이잖아요. 그 자체만 보고도 김정호는 영화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강우석 감독의 스무 번째 영화이자, 첫 사극이다. ‘투캅스’처럼 코미디도, ‘공공의 적’ 같은 범죄 장르도, 스릴러인 ‘이끼’도, 격투액션인 ‘전설의 주먹’도 해 보니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증”이 앞섰다.

“다 해 봤더니 할 게 없더라고요. ‘당분간 쉬자, 감독이 작품 안 한다고 잊혀지겠느냐’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다 (영화의 원작인) 박범신 작가의 ‘고산자’를 읽었는데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잡은 게 사극이 된 거죠.”


영화는 김정호(차승원)의 여정을 따라 한반도 최남단인 마라도부터 최북단인 백두산까지 유려한 풍경을 담아낸다. 영화의 시작 부분이지만 하이라이트이고,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보아야 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촬영 순서로는 백두산이 가장 먼저였다. 금강산도 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고, 백두산은 중국 쪽에서 가까스로 오를 수 있었다.

“여러 곳의 촬영을 앞두고 있자니, 모든 그림들이 백두산과 견주어 손색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원래 초반에 위험한 장면을 많이 찍는 편인데, 그렇게 찍어 두면 극의 흐름이 잡혀요. 백두산도, 이걸 찍지 못하면 나머지를 어떻게 찍을지 모르겠더라고요. 먼저 백두산에 들어가보자 하는 게 그래서 이뤄진 거예요.”

영화에는 우리 영토의 동쪽 끝이자 일본과 끊임없이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독도도 등장한다. 한편에서는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독도가 들어간 것이 현대 상황을 작위적으로 끼워 넣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그래도 강 감독은 뚝심 있게 ‘독도행’을 밀어붙였다. 

[7일 개봉한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 윤병찬 기자/[email protected]]


“원작에서는 마지막에 찾아가는 곳이 독도가 아니라 간도(만주 길림성 동남부지역)예요. 하지만 지금 영화에서 간도를 찾아간들, 이미 중국땅이고, 거기서 고초를 겪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현재 우리 땅의 최후의 보루라는 느낌이 드는 독도를 가게 된 거예요.”

역사적 ‘기록’보다는 ‘증언’에 의존해 전해지는 인물인 김정호를 내세워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다. 그래도 원작 소설이 있어서 그 힘을 빌릴 수 있었다. 박범신 작가는 “자료가 너무 없으니 오히려 편했다”고 한다.

“시대적 상황만 맞아떨어지면 ‘픽션’이 가능하니까요. 저는 김정호를 평가한 여러 사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들 얘기의 공통점이 드러나더라고요. ‘왜 목판이었나, 이것은 배포용이고 백성에게 나눠 줄 목적이었다.’ 이것은 정확한 팩트이니까, 그 정신만 가지고 간 거예요.”

[7일 개봉한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 윤병찬 기자/[email protected]]

최근 역사적 인물을 다룬 영화들에서 어김없이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통과의례가 됐다. 김정호 하면 따라다니는 식민사관 논쟁도 영화에 큰 장애물이었다. 일본이 조선시대를 깎아내리기 위해 만든 사관으로, 김정호라는 대단한 지도를 만든 인물이 있었음에도 쇄국정책을 펼친 흥선대원군이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옥사시키고 지도와 목판을 불태웠다는 내용이다.

“역사 왜곡은 둘째치고, 식민사관이라는 말이 붙으면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한국 영화감독이 어떻게 식민사관을 따라가요. 흥선대원군이 김정호를 옥사시키고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들어가면 훨씬 영화적으로 극적인 장치가 될 수 있었겠죠. 그런데 절대 그 이야기는 쓸 수가 없었어요.”

영화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는 김정호의 조수인 바우(김인권)가 광화문 앞에서 대동여지도를 펼쳐보이는 장면이다. 그는 “찍을 때도 굉장히 엄숙했다”며 “원작 ‘고산자’ 제목에 ‘대동여지도’를 붙여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될 수 있게끔 중요한 장면이었고 이 장면이 관객에게 와 닿지 않으면 실패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김정호의 발걸음의 무거움과, 대동여지도를 펼치는 엄숙함만 있는 영화일 것 같지만, ‘강우석 식’ 유머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에 출연 중인 차승원이 “내가 삼시세끼 다 해줄 수 있는데”라며 능청스럽게 하는 대사나, 오늘날의 내비게이션을 상상하는 김인권의 연기 등이다. 이를 반기는 관객들도 많다.

“김정호의 신념, 가족, 부대끼는 삶이 나오는데 앞부분까지 진지해 버리면 관객이 후반에 가서 이미 영화를 따라가길 포기할 것 같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웃고 즐기고 하다가 후반에 ‘아 이런 인물이었어?’ 하는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고 싶었어요.”

추석 연휴 라이벌인 ‘밀정’과의 경쟁에서 초반 밀린 것에 대한 소감도 말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전체관람가이고, 가족영화로 포지셔닝하고 있으니 연휴 때 살아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에요. 긴장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거죠.”

사극으로 새 출발을 다짐한 강 감독의 스물한 번째 작품은 무엇이 될까.

“그건 좀 더 숨을 돌리고 생각해 볼 건데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도 살짝 코미디를 해 보니까 또 그것에 대한 갈증을 심하게 느끼고 있더라고. 다음 작품은 아마 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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