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박정희의 탈(脫) 이데올로기

1972년과 1973년 남북관계 해빙의 서광이 비쳤다면, 1974년과 1975년은 그 햇빛이 좌익에 의해 가려진 해이다.

1972년 7월 4일 남북 간 정치 대화 통로와 한반도 평화정착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남북 최초 합의 문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고, 남북 대화가 진행되던 1973년 6월23일 대통령 박정희는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과 호혜 평등 원칙하의 문호 개방을 골자로 하는 ‘6.23 선언’을 내놓았다.

그러나 1974년 8월15일 조총련계 청년 문세광이 광복절 경축행사장에서 총으로 박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를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 해빙 무드에 찬물을 끼얹었다.


1975년 4월 20일에는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여의도 안보총궐기대회가 열려 냉전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른다.

그런데, 그해 9월 대한뉴스는 “이달 13일 조총련계 재일동포 모국방문단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30년만에 고국을 찾은 조총련계 재일동포 700여명은 2주일간 머물며 현충사, 불국사, 울산 현대조선소, 포항제철 등을 둘러보고 고향을 찾아 성묘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오실 어머님을…불초한 이 자식이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비옵니다.”

그해 9월 24일 장충단 국립극장에서 열린 ‘모국방문단 서울시민 환영대회’에서 희극인 김희갑이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면서 귀향의 감동은 절정에 달했고, 장충동 일대는 울음바다가 됐다.

징용으로 끌려갔던 재일동포는 분단과정에서 조총련-거류민단으로 갈렸고, 조총련계는 남한을 방문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41년전에 이뤄진 조총련계 재일동포 남한 첫 방문은 냉전 분위기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전향적으로 이뤄낸 탈 이데올로기 행보로 평가된다.

함영훈 선임기자/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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