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구원등판 ‘책임경영’ 전면등장

삼성그룹 새출발 신호탄 분석

‘위기 속 기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찾은 정공법이다. 글로벌 경기 부진에 따른 조선업 및 건설업 위기, 외국계 헷지펀드의 계열사 합병 반대 속에서 그나마 잘 나가던 삼성전자마저도 갤럭시노트7 사태로 흔들리는 가운데, 등기이사 선임이라는 정공법으로 공식적인 이재용 시대 개막을 알렸다. 실질적으로 삼성그룹을 이끄는 삼성전자의 위기를 전면에서 돌파해, 경영 능력에 대한 일각의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안 처리를 위한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결의했다. 하반기 실적을 이끌 기대주 갤럭시노트7이 예상치 못한 베터리 문제로 회사 전체가 위기감에 휩싸인 가운데 나온 깜짝 발표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런 와병에도 지난 2년간 직접적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이 부회장의 이 같은 결정은, 사실상 이재용식 삼성그룹 출발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회장의 부재 속 등기이사 부회장의 등장은 본격적인 3세 경영의 시작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며 “등기이사는 단순 권한을 넘어 경영 책임까지 진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타이밍도 주목받고 있다. 그룹 계열사간 지분 정리도 아직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고, 또 일부 계열사는 여전히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상반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던 그룹의 핵심 삼성전자도 최근 갤럭시노트7 사태로 큰 타격을 입은 상태다. 위기에 위기가 층층히 쌓인 상태에서 나온 결정이다.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안건을 결의한 이사회는 “이재용 부회장이 COO(최고운영책임자)로서 수년간 경영전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쌓았으며, 이건희 회장 와병 2년동안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실적반등, 사업재편 등을 원만히 이끌며 경영자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충분히 보여줬다”며 “변화무쌍한 IT 사업환경 아래 미래 성장을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 핵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재편, 기업문화 혁신 등이 지속 추진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이사 선임과 공식적인 경영 참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에게 직접 나서 위기를 돌파해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이 처럼 어려운 경영 환경은 이 부회장에게 역으로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 보여준 과감한 사업 재편과 신수종 사업에 대한 집중 투자가 바이오시밀러 시장 선점, 반도체 영향력 확대, 갤럭시S7의 예상치 못한 히트 등을 이끌어 냈듯이, 갤럭시노트7 사태를 정면에 나서 이겨낼 경우, 그의 경영 능력은 자연스럽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룹의 오너가 전면에 나서 위기를 극복한 사례는 해외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글로벌 외환위기 속에서 회사 창립 40여년만에 처음으로 25억달러라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던 독일 BMW는 오너 퀸트가가 직접 나서 적자의 원인이던 영국 로버 그룹을 단돈 10파운드에 되팔며 전문경영인의 판단 미스에 따른 위기를 극복했다. 또 10년 후 일본 도요타 역시 5조원에 달하는 적자로 이어진 960만대에 달하는 대규모 리콜 파문을 오너의 등판으로 이겨냈다. 14년만에 경영 전면에 나선 아키오 도요타 사장은 수익성 제고, 제품력 강화, 신흥시장 개척 등 3대 전략을 통해 불과 3년만에 다시 도요타를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으로 복원했다.

삼성전자의 최근 상황도 1999년 BMW, 또 2009년의 도요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출시 직후 연이은 발화 사고에 회사 최고 경영진들이 나서 사실상 리콜을 결정하고 공식 사과까지 했지만, 그 사이 미국 당국과 세계 항공사들은 사용 중단과 탑승 거부 등으로 삼성전자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사과부터 실제 제품 회수 및 교환까지 불가피한 시간차가 삼성전자에게 커다란 위기를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안 좋은 상황에서 오너 일가가 전면에 나설 경우 그룹 안팎에 책임경영이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지난 2년간 활발한 구조조정과 내부합병 등으로 지배구조 윤곽이 어느정도 나타난 만큼, 이 부회장 본인의 경영 능력을 대내외에 확실하게 보여줄 때”라고 강조했다.

최정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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