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유엔사무총장①] 물 건너간 첫 여성 사무총장?…선출 과정, 국제정치 ‘축소판’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가 올해로 끝나면서 차기 유엔을 이끌 수장자리를 놓고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은 대륙별 순환이라는 암묵적 원칙이 있다. 이 원칙대로라면 이번에는 동유럽권 국가에서 사무총장이 배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복잡한 선거 과정과 얽히고설킨 국제역학관계 때문에 섣부른 전망은 금물이다.

사무총장이 단일후보로 유엔 총회에 추천되려면 15개 안보리 이사국 가운데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보다 중요한 게 5개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의 동의를 얻는 것이다. 단 하나의 상임이사국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된다. 안보리는 10월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후보 한명을 총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일단 현시점에서 가장 앞선 후보는 포르투갈 출신의 안토니우 구테헤스다. 국무총리와 유엔 난민기구 최고대표로 활동한 경력은 물론 청문회에서 막힘없는 답변과 화려한 언변으로 지난 7월부터 이어진 4차례의 비공개투표에서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다. 


구테헤스 전 총리는 지난 9일(현지시간) 제4차 투표에서도 선두를 지켰다. 구테헤스 전 총리는 이번 투표에서 ‘권장(encouraged)’ 12표, ‘비권장(discourage)’ 2표, ‘의견 없음’(no opinion) 1표를 받았다. 지난 8월 3차 투표에 비해 권장이 11표에서 12표로 1표 늘었고, 비권장이 3표에서 2표로 1표 줄었다.

문제는 2표로 나온 비권장 표다. 만약 비권장이 상임이사국에서 나왔다면 구테헤스 전 총리는 사무총장이 되기 어렵다.

유엔 안팎에서는 러시아의 비권장 투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포르투갈은 유럽연합(EU) 및 나토(NATO) 회원국이다. 러시아가 구테헤스 전 총리를 수용하기 힘든 배경이다. 여기에 ‘동구권의 맏형’으로서 사실상 동유럽 몫의 사무총장을 포르투갈에 내주는 것도 모양새가 빠진다. 아르헨티나 출신 후보를 과거 포클랜드 전쟁 이후 앙숙이 된 영국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국제관계 지형도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사실상 러시아와 입장을 같이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변수다. 지난번 아시아 출신의 반 총장을 지지했던 중국을 러시아가 반대하지 않았듯이 이번에는 중국이 러시아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구테헤스 전 총리의 뒤를 이어 미로슬라브 랴차크 슬로바키아 외교장관과 부크예레미치 전 세르비아 외교장관 등이 쫓고 있다. 그러나 이들 동구권 후보들은 구테헤스 전 총리를 추월하기에는 버거운 모습이다.

차기 사무총장 레이스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사퇴를 선언하는 후보도 나오고 있다. 코스타리카 여성 외교관 출신인 크리스티아나 피구에레스는 지난 12일 사퇴를 공식선언했다. AFP에 따르면 피구에레스는 “안보리 투표 결과는 나의 후보 자격에 큰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암시했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그는 코스타리카가 여성 사무총장을 배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아니더라도 여성 후보 선출을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는 5명의 여성 후보가 나섰지만 현재까지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성 후보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이다. 일찌감치 첫 여성 유엔 사무총장 1순위로 손꼽혀온 보코바 사무총장은 4차 투표에서 피구에레스를 포함한 5명의 여성후보 중에서는 1위를 차지했지만, 전체 후보중에서는 5위에 그쳤다. 불가리아 출신인 보코바 사무총장은 러시아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코바 사무총장이 남성 후보들을 앞지르지 못하면서 불가리아 내부에서 후보 교체 움직임도 일고 있다. 유력 대체 인물도 거론된다. EU 집행위원회 위원인 크리스티나 게오르기에바가 그 주인공이다. 로이터는 불가리아 정부가 게오르기에바를 추천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EU내에서 역량을 인정받은데다 여성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도 무난하게 받아들일 인물이라는 평가다. 만약 게오르기에바 위원이 뒷심을 발휘하면 ‘칠부 능선’을 넘은 구테헤르 전 총리의 앞날도 장담하기 힘들 것이란 게 외교가 안팎의 전망이다.

다만 첫 여성 유엔 사무총장의 탄생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차기 사무총장에 대한 고민이 시작될 때만 해도 70년이 넘어선 유엔 역사상 8명의 사무총장이 모두 남성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인류 절반의 대표성을 회복해야한다며 여성 사무총장이 나와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반 총장도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이 여성 사무총장이 나오기에 딱 좋은 적기”라며 여성 사무총장 탄생을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 4차례의 투표 결과는 현실장벽이 만만치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무총장 레이스에 뛰어든 수사나 말코라 아르헨티나 외교장관은 앞서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 대해 “아직도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진 표가 있다”며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능력을 고려할 때 작게나마 여성에 대한 부정적 여지가 항상 남아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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