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X파일] 단 1%의 우려도 용납하지 않은 도쿄 도지사의 결단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15년 간 진행된 대형 이전 프로젝트를 의혹 하나로 전면 연기시켜버린 도지사가 있다. 바로 일본의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 도지사다. 고이케 지사는 오는 11월 7일 쓰키지 시장(築地) 이전 계획에 전면 제동을 걸었다. 새 이전지의 정화작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100%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고이케 도지사는 지난달 31일 △안전성에 대한 우려 △ 불투명한 비용의 거대화 △ 정보공개의 부족을 이유로 쓰키지 시장의 이전 계획을 전면 연기했다. 
쓰키지 시장이 11월 7일 이전할 예정이었던 도요스 시장의 모습 [사진=마이니치(每日)신문]

도쿄 최대 어시장인 쓰키지 시설의 이전논의는 2001년 공식제기됐다. 당시 도쿄 도지사였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 愼太郞)는 낙후된 쓰키지 시장을 재정비하는 대신 도요스(豊洲) 시장으로 이전시키기로 했다. 이전 예정지인 도요스 부지에는 납, 수은, 비소, 시안, 벤젠 등 유독물질이 많이 검출됐다. 도요스 부지가 과거 가스공장으로 운영됐기 때문이다. 이시하라 전 지사는 “재정비보다 도요스 이전 지역 정화에 나서는 것이 낫다”라며 공장 부지에 깨끗한 흙을 4.5m 높이로 쌓겠다고 밝혔다. 지하에 벽을 만들고 지하수를 정화해 사람이 직접 유해물질을 섭취하지 않고 어패류가 오염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덧붙였다.

도요스 시장의 정화비용에는 총 849억 엔(약 9340억 원)이 들었다. 도쿄도는 ‘토양오염 대책’을 수립해 2년에 한 번씩 토양 오염을 점검했고, 2014년 11월 18일부터 올해까지 총 8차례의 지하수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하지만 토양오염 및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고이케 지사는 ‘토양 오염 제거’의 완전조건은 “지하수 오염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가 2년 이상 지속됐을 때”라면서 지하수 모니터링이 만 2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전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지하수가 오염됐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9회차 지하수 모니터링은 오는 11월 18일 이뤄지며 내년 1월 결과가 공개될 예정이다. 고이케 지사는 결과에 따라 쓰키지 시장 이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시하라 전 도지사가 약속했던 4.5m 높이의 깨끗한 흙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자 고이케 지사는 “왜 토양오염을 둘러싼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이라며 “건설비용도 갑작스럽게 당초 990억 엔에서 2752억 엔으로, 그리고 전체 비용은 3226억 엔에서 5884억 엔으로 부풀려진 것인지 규명하겠다”라고도 표명했다. 

도요스 시장 지하시설의 고인 물을 확인하는 도쿄 도의원 [사진=일본 공산당]

의혹은 현실이 되고 있다. 14일 도쿄도 도의회 의원들은 도요스 시장의 주요 시설을 시찰했다. 이 과정에서 지하시설에 20㎝가량 높이로 물이 쌓인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산케이(産經)신문과의 인터뷰에 한 도의원은 채취한 물이 “칙칙한 갈색”이었다며 “PH시험지에 물을 묻혀보니 시험지가 알칼리성을 나타내는 짙은 청색으로 변했다”라고 말했다. 이 도의원은 “자연계의 물은 중성이거나 약산성을 띈다”라며 “화학물질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상 강알카리성이 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지하수가 오염됐을 가능성을 크다는 것이다.

고이케 지사는 단 1%의 위험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았다. 도요스 시장의 지하수 오염도는 지난 8차례 모니터링 검사에서 기준치 이하 판정을 받았지만, 고이케 도지사는 도민의 식품안전을 해할 우려가 있는 부분들이 확실하게 밝혀질 때까지 쓰키시 시장의 이전을 보류하겠다고 천명했다. 안전의 문제는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유학 중인 박사과정생 A 씨(31)는 헤럴드 경제에 “일본이 안전국가가 될 수 있던 비결”이라며 “고이케가 극우인사로 알려져 있지만, 안전문화에 또다른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도민들의 반응만 봐도 정보의 정확성과 투명성에 따라 국민의 생사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 나라는 알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일본이 쓰키지 시장 이전 연기로 떠들썩해진 사이, 경북 경주 시에서는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 12일 규모 5.8 강진이 대구, 경주, 울산 일대를 덮쳤지만 국민 안전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정보는 투명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았다. 재난 알람 문자는 지진이 발생한 지 8분 만에 수신됐다. 대피요령을 놓고 매체들은 “탁자 밑에 숨어라”, “숨지 말고 대피하라”라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서병수 부산시장도 “일본식을 차용한 지진 대피 매뉴얼을 부산 실정에 맞게 대체하라고 지시했다. ‘건물 내부에 있는 사람에게 지진 발생 시 탁자 밑으로 대피하라는 권고내용은 일본의 건물 대부분이 목조로 돼 있기 때문이고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라는 보도내용에 따른 것이었다.

헤럴드경제 확인 결과, 일본이 지진이 발생했을 때 탁자 밑에 숨으라고 권고한 배경에 목조건물이 연관되어 있다는 내용의 자료는 ECA나 국민 안전처, 세계 각국 지진 대피 매뉴얼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또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캐나다 등도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 내부에 있는 사람은 대피하기보다는 안전한 곳을 찾아 몸을 가구들로부터 보호하라고 권고한다. 각국의 매뉴얼은 건물 내부에 있는 사람이 지진으로 건물 붕괴로 사망할 확률보다 떨어진 가구나 전등, 유리 등에 맞아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에 일단 튼튼한 탁자나 침대 밑, 혹은 주변에 가구가 없는 문틀에 숨고 지진이 멈추면 밖으로 대피하라고 밝혔다. 미국 국토안보부와 독일 등 연구단체들이 결성한 지진국가연합(ECA)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즉각 대피하라고 권고하는 곳은 흙으로 만든 집이 많거나 전문 건축공법을 사용하지 않은 국가뿐”이라고 적시했다.

도요스 시장 지하시설에 고인 물 [사진=일본 공산당]

우리나라 건물들이 ‘후진국 수준으로’ 내진설계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검찰과 각 지자체는 즉각 부실공사를 강행한 건축업체들을 조사해야 할 것이다. 국회는 단순 ‘권고수준’에 그치는 내진설계 규정을 개정하고 이에 따르지 않는 건축업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건축법 상 우리나라는 1988년부터 6층 이상의 고층건물에 대한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있다. 고이케 지사는 도민의 식품안전을 보장하고자 정보의 투명성과 정확성, 그리고 확실성을 주문했다. 도요스 시장 정화를 담보했던 정치인들의 자금내역도 철저히 파헤칠 것이라고 시사했다. 고이케 지사가 비록 ‘극우’ 인사이지만 도민 안전을 위한 그의 결단만큼은 우리도 배울 필요가 있다. ‘우려’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지만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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