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까마귀 고기

까마귀와 관련된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옛날 한 객주에 손님이 들끓어도 돈이 든 전대나 봇짐 하나 놓고 가는 사람이 없어 주인은 불평을 했다.

어느 날 “까마귀 고기를 먹으면 기억력이 나빠져 잘 잊어버린다”는 말을 듣고, 까마귀를 구해다가 손님들에게 먹였더니 오히려 전대를 놓고 가는 것이 아니라 숙박비나 밥값 내는 것을 까먹고 갔다고 한다. 까마귀로 기억상실증을 유발하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우스갯소리다.

까마귀 고기가 왜 기억을 오락가락하게 만드는 용어로 사용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기 냄새가 워낙 지독해 정신이 어지러워진다는 데서 연유했다는 설도 있고 ‘까맣게 잊었다’를 까마귀의 발음과 비슷해서 나온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우리 사회는 꼭 까마귀를 먹은 ‘기억상실증’에 놓인 구조 같다. 수백명의 꿈 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안전불감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경주에서 발생했던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으로 학교 등 교육현장의 불안한 재난 대응 실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수많은 안전 훈련과 재난대처 프로그램에도 실제상황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지진 발생 당시 포항ㆍ경주 지역 대부분 고등학교에서는 한창 야간 자율학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학교는 지진 발생 직후 학생들에게 별도의 대피 지시를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학생들에 따르면 지진 발생으로 건물이 흔들리거나 형광등이 파손되는 등 혼란이 일어났음에도 일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책상 앞을 지키거나 소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한 학교는 지진 발생 직후 “야간 자율학습을 그대로 진행한다”는 문자를 학부모들에게 발송해 불안감을 더욱 키우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은 계속 되고 있다.

박세환 기자/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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