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 명물인가 흉물인가 ②] 회색 덧칠된 이화마을 벽화…“오죽하면 그랬겠나”

-벽화 생기자 국내외 관광객 몰려 소음ㆍ쓰레기

-주민들 생활 불편 민원 불구 당국은 ‘나몰라라’

-서울시 “아직 협의단계…시간 더 지나야 윤곽”

[헤럴드경제=강문규 기자ㆍ이원율 기자] “놀러 온 사람들이야 예쁘게 볼지 몰라도 일부 주민들은 없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조용히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걸로 유명해진 후로는 허구한 날 소음에, 쓰레기에…. 벽화 훼손으로 잡혀간 사람들 탓할 생각 솔직히 없습니다.”

‘벽화마을’로 더 알려진 이화마을에 사는 한 주민은 훼손된 계단 벽화를 보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살던 곳이 갑작스레 유명 관광지가 된 후로는 마음 편한 적이 없었다”며 “훼손 사태가 벌어지기 전 서울시가 방문객의 일탈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몇몇 주민들에게 훼손된 채 지금까지 남아있는 회색 페인트 계단. 한때는 잉어와 꽃들이 그려진 이화마을 내 명소였다.

명절 연휴기간인 지난 17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이화동 이화마을은 유명 관광지답게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이화마을 주민 들이 관광객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한때 명소였지만 지난 4월 페인트로 덧발라 ‘흉물’이 된 계단은 훼손된 그대로였다.

누구에게는 한번 둘러보고 싶은 관광지였지만 누구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다. 주민들은 소음과 끝없는 쓰레기를 벽화마을의 문제로 지적했다. 마을주민 이모(63ㆍ여) 씨는 “시집 온 후부터 지금껏 이렇게 동네가 시끄러웠던 적이 없다”며 “일회용 컵이나 개 배변물 같은 걸 보면 이제 진저리가 난다”고 토로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임모(71ㆍ여) 씨는 “중국인들이 떼거리로 몰려오면 그 주변이 다 뒤집어진다”며 “그런 모습을 보면 벽화를 없애고픈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방문객들이 이화마을 벽화를 배경으로 두고 사진을 찍고 있다.

낙후된 산동네였던 이화마을은 10년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벽화와 그림 계단 등을 조성해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당시 대학교수 등 전문가 68명이 참여해 종로구 이화동 9번지 일대에 70여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문제는 유명 관광지가 된 이후였다. 지난 소음과 낙서 등을 참지 못한 일부 벽화마을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지만 이들은 민원이 해결되지 않자 벽화를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4월 이 마을 주민 5명은 벽화마을 한 계단에 그려진 4000여만원 상당의 해바라기 그림에 회색 수성페인트를 덧칠해 지우고 며칠 뒤 벽화마을 다른 계단에 그려진 1000여만원 상당의 잉어 그림을 회색 유성페인트로 덮었다.

경찰에 붙잡힌 주민들은 “소음과 낙서, 쓰레기 등으로 민원을 넣어도 나아지지 않아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주민들은 벽화를 훼손한 이웃들의 심경을 ‘그럴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A 씨는 “오죽하면 자기 마을을 그렇게 하겠느냐”며 “벽화 마을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주민 불편이 생기면 그 민원부터 적극 해결해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벽화 훼손사건이 일어난지 다음달이면 반년이 되지만 아직 협의엔 별 진전이 없다고 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 불편사항을 들으며 의견 조율단계가 지금도 진행 중”이라며 “벽화 훼손사건에 대해서도 훼손 이유와 타협점 등을 두고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화마을에서 진행하려는 도시재생 사업과 이번 갈등은 상관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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