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의 속살은 바다보다 탐난다

표선 해변
가시리 마을엔 조랑말 등 체험시설 다채
해비치 당케포구 제주 최고 일출 손꼽아

안덕 계곡
희귀·상록교목에 둘러싸인 눈이시린 玉水
기암절벽·주상절리, 한탄강 계곡 못지않아

제주의 매력, 그 끝은 어디일까.

제주를 두고 마니아들 사이엔 “제주는 백 번을 와도 늘 새롭다”는 말이 있다. 서른 번은 더 왔을 2016년 9월 여행에서도 제주는 이방인에게 감춰둔 매력을 슬며시 내보였다.

표선에서는 ‘가시리’를 만난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 살라고…’ 이별의 정한(情恨)을 노래한 그 가시리가 아니다. 이름도 생소한 가시리는 자연미와 문화예술, 주민들의 인정이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웅혼한 아름다움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남서쪽 안덕과 서광도 금강 부럽지 않을 계곡과 마을 주민들이 손수 농사지은 것으로 아름답게 꾸민 별난 카페, 감귤창고가 여행자에게 감동을 전했다.

제주와 서귀포시 중심지역, 명승지를 피해 다니다 표선 해변에서 중산간쪽 좁은 길로 들어서 세화리와 역지동을 지나자, 말이 뛰어오르는 모양의 조각상과 함께 가시리는 시작된다.


말은 이 마을 상징이다. 조선시대 최고 목마장이던 갑마장과 녹산장이 모두 이곳에 있다. 갑마장이 있던 가시리 공동목장에는 조랑말 박물관, 승마장, 캠핑장이 어우러진 조랑말 체험공원이 조성돼 있다. 국궁장, 큰사슴이오름, 유채꽃프라자, 가시천, 따라비오름으로 이어지는 갑마장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오른 녹산로과 연결돼 있다.

갑마장길 종점 격인 따라비 오름은 ‘오름의 아버지’라 불린다. 주변에 모지오름, 장자오름 등을 끼면서 가장 격으로 솟아있어 ‘따애비(地祖岳:지조악)’로 불리다 따래비, 따라비로 변했다. 이 마을 북쪽 구좌 종달리에는 한라산을 빼닮은 손자오름이 있어 대조적이다. 한라산이 할아버지이다. 따라비오름은 3개의 원형분화구와 6개의 봉우리가 말굽형태로 이뤄져 있는데, 용암의 흔적이 아름다운 연결선을 만들어내고 가을이 되면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가시리 주민들은 똑똑했다. 문화예술인 창작지원센터를 만들어 국내외 예술가들이 이곳에 살며 창작활동을 할수 있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온 동네에 문화의 향기가 넘치고 예술인들이 개설한 다양한 교육과 주민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다. 마을사무소는 ‘더 재미진 마을 가시리’라는 팻말이 공회당 간판을 대신한다.

가시리에는 과거 국영목마장들의 경계를 표시한 돌담 ‘잣성’, 마을 공동체가 운영하는 숙박, 체험 시설인 유채꽃 프라자, 붉은 오름 자연휴양림, 서재철 사진작가가 옛 가시초등학교 부지에 지은 자연사랑 갤러리도 있다. 표선 성읍리에는 국내 유일하게 낙타를 타 보고 먹이주기 체험을 할 수 있는 ‘포니밸리’가 눈길을 끈다.

등대와 야자수가 지키는 가시리 남쪽 해비치해변은 그냥 아름다운데 그치지 않는다. 물질을 마치고 돌아와 집안일을 돌보는 해녀 조각상에는 짙은 모정이 있고, 해녀 라커룸 불턱의 자취에서는 그들의 숨가쁜 숨비소리 애환과 재잘거림이 들린다. 불턱 옆에는 몸매를 뽐내는 해녀의 석상도 보인다. 올레길 3,4코스를 이어주는 해비치 당케 포구는 제주에서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이다. ‘당(堂)케’는 원래 깊은 바다였지만 제주의 창조여신 설문대할망이 어부와 해녀의 안전을 위해 메웠다고 한다.

표선 북쪽 조천읍 선흘리에서는 부대악과 부소악을 휘감아 돌거나 오르 내리는 코스의 말타기를 즐기는 제주오름 승마랜드가 있고, 동쪽의 성산 섭지코지는 여행과 결혼식을 한번에 해결하려는 ‘트레딩(Travel Wedding)’ 신혼부부의 단골 방문지이다. 성산에서 표선으로 이어지는 올레길 5㎞ 구간은 휠체어로도 갈수 있도록 조성돼 있다. 전체 올레길 중 38㎞ 구간을 장애우도 가도록 배려한 제주의 마음이 아름답다. 사유지 초원임에도 관광객을 위해 올레길 3코스로 흔쾌히 내준 신천목장(성산읍 일주동로 5419) 주인의 마음도 그렇다. 초원과 바다가 맞닿은 이 목장에서는 ‘각설탕’, ‘내생애 봄날’ 등 촬영이 이뤄졌다.

제주 5일장도 육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문화 한마당이다. 성산은 끝자리 1일과 6일, 표선은 2일과 7일 열린다. 4일과 9일 열리는 서귀포 향토 5일장에는 라이브 가수들의 공연이 진행되고, 트멍장터 먹자 거리, 추억의 게임 및 체험존, 백원의 행복 경매프리마켓이 개설된다. 5일장의 마스코트, ‘오는 돈’과 ‘가는 말’이 물허벅을 이고 관광객들에 장난을 걸기도 한다.

차를 남서쪽으로 몰아 산방산 인근 안덕의 중산간 서광리에 당도하니, 마을 기업의 따뜻한 온정과 제주신화역사공원 개발사업의 분주함이 교차한다.

서광동리 느영나영 감귤창고는 마을 커뮤니티 비즈니스 카페이다. 공공기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기획한 지역상생을 위한 마을 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카페에는 젊은이들이 금방이라도 연주에 들어갈 것 같은 그룹사운드 악기들이 예쁜 테이블과 함께 어우러져 있고, 각종 음료와 감귤쿠키, 핸드메이드 석고방향제, 주민이 생산한 농산물이 진열돼 있다. 늙은 호박 두 개를 얹어 소박미를 더한 피아노 앞에서 이 카페 20대 바리스타 조아라씨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다.

서광서리에는 JDC가 후원한 마을기업 ‘별난카페’가 들어서 있다. 이곳의 음료 등은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주재료로 사용한다. 블루베리의 5배에 달하는 비타민을 보유한 삼동(상동나무 열매)라테와 무채볶음을 메밀로 감싼 빙떡이 별미이다. “찬 성질의 메밀을 무로 중화시킨 빙떡은 과학이우다.” 빙떡을 설명하는 글이 여행자를 파안대소하게 한다.

우리동네 농산물 코너에는 차옥자 할망이의 건강한 고사리, 김선보 할망의 검정찰보리, 김확실 아주망이의 표고버섯, 고남희 아주망이의 약콩, 고유성 삼촌의 벌꿀, 조영재 삼촌의 팥 등 생산자가 브랜드 이름이다.

탐라의 건국신화를 다채롭게 꾸며 서광리를 공원화하는 사업은 휴양형 복합리조트 개발과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서광리 중산간에서 출발에 안덕 해변쪽에 거의 다다를 무렵, 강원도 계곡이 부럽지 않을 안덕 계곡이 나타난다. 한탄강 식으로 계곡이 패이면서 생긴 계곡은 기암절벽과 주상절리, 상록교목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옥수(玉水)가 흐른다. 난대림 구실잣밤나무, 동백, 후박나무, 종가시, 생달나무와 희귀식물인 담팔수와 상사화 등 300여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이 계곡 상록수림지대 전체가 천연기념물 377호로 지정돼 있다. 유배된 추사 김정희 선생이 자연동굴 형태의 바위그늘집터에서 심신을 닦았다는 말도 전해진다.

안덕계곡과 산방산 사이 화순해변 부터 제주 본도의 최남단 송악산을 거쳐 모슬포로 이어지는 올레 10코스는 제주도-스위스 양국 우정의 길로 명명돼 있다.

표선과 안덕 사이 즉 서귀포 중심부 해변의 ‘외돌개’도 빼어난 절경인데, 모르는 육지 사람이 꽤 있다. 늘 가던 곳에서 숨은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은 처음 개척하는 곳에서 느끼는 신선함 못지 않다. 무엇이든 못할 것 없는 이 가을, 보석이 있다면 그것을 캐내는데,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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