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불안전지대 한반도] 3년간 떠돈 지진관측장비 예산 95억

규격미달·규정부실로 집행 미뤄

지진 감시와 분석 업무를 담당하는 기상청이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제때 소화하지 못하고 미룬 지진관측장비 도입 예산만 약 1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일과 19일 경주 강진(强震) 당시 ‘오락가락 대응’이 이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헤럴드경제가 국회 예산정책처의 최근 1년간 결산자료를 종합 분석한 결과, 기상청의 지진관측장비 도입 및 설치 지연이 2013년부터 ‘연례행사’처럼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까지 총 4년간 계획대로 지진관측장비가 국내에 도입되거나, 지진조기경보시스템이 마련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이다.

기상청은 지난 2013년 특정 업체와 지진관측장비 구입계약을 체결하고 장비 도입까지 속전속결로 마무리 지었다. 동일본 대지진(2011년 3월)이 발생한 지 약 2년 만이다. 그러나 검수과정에서 장비의 규격미달, 관련 시스템과의 호환성 부족, 성능 부적합 등이 발견돼 계약을 해지, 구입예산 11억8500만원을 전액 이월했다.

문제는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2014년에는 정부의 지진관측장비 구입 및 시추공 공사계획이 7월에야 수립됐고, 결국 조달청 공고 및 조달업체와의 계약절차는 이듬해로 밀렸다. 2014년에 배정된 지진관측장비 구입비 43억5000만원 중 36억5000만원(83.8%)과 장비 시추공 공사비 13억5000만원 중 13억4600만원(99.7%)이 2015년으로 넘어간 이유다.

그러나 2015년에도 지진관측장비 구입비로 책정된 66억3000만원 중 제대로 집행된 것은 37억8200만원에 불과했다. 전체적인 지진대응 계획 없이 2014년도 미집행 예산을 소화하는데만 급급했던 셈이다. 이에 따라 23억9800만원의 관련 예산과 장비 시추공 공사비 30억7100만원 중 9억1700만원은 또 올해로 넘겨졌다.

3년간 총 95억여원의 예산이 정처 없이 떠돈 셈(사후 집행분을 차감하지 않은 이월분 단순집계)이다. 전문가들은 지진대응 체계 마련이 수년간 밀린 원인을 ‘제도의 허점’에서 찾았다. 예정처에 따르면, 2014년 ‘지진ㆍ해일ㆍ화산관측 및 경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지진관측장비를 검증할 법적 근거는 마련된 상태다.

21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참석자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지진과 북핵 대책이 집중 논의됐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황교안 국무총리.
안훈 [email protected]

하지만 지진관측장비 제작업체의 검증의무 등 세부 규정이나 시설은 여전히 부실하다. 실제 기상청은 지난해 ‘지진관측장비 검정체계 검정용 지하암반터널’을 건설하려 했었지만, 잦은 사업계획 변경으로 결국 관련 예산을 모두 이월시킨 바 있다. 지진관측장비의 성능을 검증할 표준규격은 물론, 공인 시설도 없는 것이다.

관련 학계 한 관계자는 “지진관측장비 등 고가의 첨단장비는 기상청에서 직접 구매하고, 소모성 지상및 해양기상관측장비는 한국기상산업진흥원에서 도입 및 유지ㆍ보수사업을 민간대행 방식으로 수행한다”며 “통일된 검정기관을 지정하거나 장비 제작업체에게 검정의무를 부여하는 법적 근거 정비가 시급하다”고 했다.

이슬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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