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작가 신작 ‘한 스푼의 시간’, 세제 한 스푼이 가르쳐준 것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시선에서 바라 본 우리의 삶과 그 본질은 어떤 모습일까? 이 같은 궁금증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소설 한편이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위저드 베이커리’부터 ‘아가미’, ‘파과’ 등에 이르기까지 예리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도발적인 시도를 서슴지 않는 구병모 작가가 3년 만의 신작 <한 스푼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이 소설은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고 작은 동네 세탁소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는 50대 남자 명정에게 로봇 소년 은결이 택배로 배달되면서 함께 가족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은결은 만들어진 대로 충실하게 자극과 정보를 받아들이고 학습한 내용을 고도의 연산 작용을 통해 메모리에 저장해 데이터에 따라 반응한다. 하지만 인간의 삶 속에서는 이 같은 정교한 계산으로도 답을 얻기 어려운 변수들이 불쑥불쑥 등장하곤 한다.

명정을 비롯해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 온 동네 아이들 시호, 준교, 세주의 성장과정을 통해 은결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이르면 제거도 수정도 불가능한 한 점의 얼룩을 살아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 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통돌이 세탁기 뚜껑을 열고 그 안에서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가루세제의 궤적을 내려다보며 명정은 그렇게 말한다. 』(본문 184쪽)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질 짧은 시간이기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지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것을 넌지시 일러주고 있다.

<한 스푼의 시간>은 로봇 은결의 눈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과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직접적으로 꼬집어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장을 넘기다보면 한 스푼의 세제가 녹아들 듯 어느새 그 깊은 고민이 구병모 작가만의 섬세한 감성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최경침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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