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전인지의 상상력

지난주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프로골퍼 전인지의 ‘프리샷 루틴’(샷하기 전 일관되게 반복하는 동작)은 프로 데뷔 후 3년 간 변함이 없었다. 연습스윙을 하고 볼 뒤로 이동한다. 거의 ‘차렷’ 수준으로 허리를 곧게 편 채 타깃을 한참 응시한다. (이 순간은 의외로 길게 느껴져 지켜보는 이들에겐 묘한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천천히 셋업 자세에 들어가 어드레스한 뒤 샷을 날린다. 3년 전 한국여자오픈에서 프로 첫 우승을 한 전인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신인이었던 그는 대만 골퍼 청야니의 프리샷 루틴을 너무 좋아해 참고한 것이라면서 “상상한다”는 표현을 썼다.

“타깃을 바라보면서 상상을 해요. 내 클럽을 떠난 공이 어떤 궤도로, 어떤 모양의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 목표 지점에 얼마만큼 가까이 붙겠구나. 또는 내 퍼터를 떠난 볼이 내가 마음 속에 그려놓은 라인대로 예쁘게 굴러가 홀컵에 ‘톡’ 하고 떨어지겠구나. 그렇게 상상하는 루틴을 하면 정말 그렇게 되는 것같아요. 내 샷을 더 믿게 되고요.”

전인지가 한·미·일 메이저대회서 7차례나 우승할 정도로 큰 대회서 강한 이유도 ‘상상력’ 덕분이다. “메이저 코스는 풍부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다양한 코스매니지먼트를 요구하는 코스가 매력적”이라고 했다. 6년째 전인지의 스윙과 멘털 훈련을 지도하는 박원 골프아카데미 원장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상상력과 관련된 훈련을 많이 해왔다”고 귀띔했다.

전인지 뿐 아니다. 리우올림픽에서 116년 만에 여자골프 금메달을 획득한 박인비, 올시즌 국내 투어에서 7승을 올리며 최다상금 기록을 갈아치운 박성현도 ‘상상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코스위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선수들이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스윙 훈련만으로는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얘기다.


다섯번의 샷 만에 홀인원을 기록한 골프로봇 엘드릭이나 이세돌을 이긴 인공지능 알파고가 가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매뉴얼이 있고 테크닉이 있고 학습능력은 있지만 상상력은 없다. 우리는 그림을 그릴 줄 알지만, 로봇은 그려진 밑그림에 색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상상력은 인간의 영역이다.

미래 직업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직업과 그 상상력을 구현하는 직업으로 나뉠 것이라고 믿는다. 현대사회의 혁신은 모두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미래는 더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엔 상상력이 부족하다. 정치는 앞을 내다보지도 못한 채 뒷걸음치고 있다. 당장 몇 년 뒤를 바라보지 못한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은 사실상 실패했다. 교육 정책은 백년대계는 커녕 ‘오년소계’도 안된다는 지적이다. 민심을 헤아리는 정치, 경제 난맥상을 푸는 정책과 기업의 역할. 모두 혁신적인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보이는 것만 보는 게 아니다. 전인지의 플레이를 보면서 상상력의 의미가 무겁게 다가왔다. 상상력은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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