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바라본 한진해운, 정부도 대주주도 ‘답답’

[헤럴드경제=박일한 고도예 기자] “한숨 돌리고 또 뛰어야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대한항공 이사회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중인 한진해운에 긴급자금 6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22일 이렇게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돈이 한참 모자란다. 문제가 되는 하역비라는 게 싸게 해 달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라면서 “물류대란을 해소하기엔 여전히 자금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을 강조했다.

2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재 한진해운 소속 컨테이너선 97척 가운데 하역을 마친 선박은 단 30척에 불과하다. 나머지 67척은 각국 항만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다. 이들 배에 실린 유랑화물(33만TEUㆍ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를 실을 수 있는 규모)을 하역하기 위한 자금만 1700억~2000억원이 필요하다. 이를 최종 목적지까지 배송하는 데 1000억~1300억원이 더 들어간다. 하역작업 지체로 하루에 약 210만달러(24억원)의 용선료와 연료비 채무가 불어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시간이 늦어질수록 화물을 맡긴 화주들의 손해배상금액 등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원 관계자도 “물류대란 해소 위해 당장 급한 불을 끄는 데만 20일 기준 용선료(배 사용비) 포함 최소 2억5000만달러(2750억)가 필요하다”며 “기업 하나를 살리고 죽이고의 문제는 지금상황에선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고 물류대란을 해소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법원 역시 겉으론 말을 못하지만, 답답하다는 표정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 경제규모 10위권인데다가 세게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의 운명을 법원 자체에서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경제여파는 물론 물류대란까지 예상되는 메가톤급 사안에서 법리적 잣대와 정서적 잣대 사이에서 곤혹스런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의 다른 관계자는 “우리는 채권단이나 대주주, 정부 등에서 결정한 내용에 대해 허가를 내주는 일을 할 뿐 주도적으로 뭔가 추진할 수는 없다”며 “그렇다고 정부나 채권단이 주도적으로 나서라고 요구할 입장도 되지 못해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파산과 회생과 관련해서 몇조원씩 규모 현안도 처리해봤지만, 한진해운의 경우 그보다도 액수는 작은데 경제적 영향 여부는 크기에 우리의 능력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현재까지 한진해운이 확보한 자금은 이번 대한항공 지원금 600억원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400억원)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100억원)의 사재 출연금 등 1100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물류대란 해소를 위해 여전히 2000억원 가까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해결책이 별로 없는 게 문제다. 대주주나 정부에 추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600억원 지원을 결정한 후 더 지원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법원에 알린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은행의 지원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불과 몇년 전 대우조선과 STX조선을 회생시키기 위해 각각 수조원을 돈을 쏟아 부었지만, 세금 낭비라는 지적을 받았다. 대우조선은 지금 경영비리와 분식회계로 수사를 받고 있고, STX조선은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명분없이 지원했다가는 자칫 특혜 의혹을 받을 수도 있다. 국내 2위 선사인 현대상선은 최근 경영위기에 빠졌을 때 현대증권을 팔고, 계열사 자산을 총 동원하는 등으로 스스로 위기를 벗어난 선례가 있었다. 일부 자금 지원이 결정된다고 해도 물류대란을 해소할 수 있는 수준에는 턱없이 모자랄 것이라는 게 법원 안팎의 판단이다.

법원은 물류대란을 해소할 수 있는 골든타임(가장 중요한 시간)을 투입 예정 자금이 모두 소진되는 2~3주로 내로 보고 있다. 그 사이에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기업 회생은 물론이고 물류대란으로 산업 전체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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