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심사·경제개혁법 표류하나…또 정치가 경제 ‘족쇄’

기재부 핵심 간부들 국회 대기상태
경제정책 일시중단 식물정부 우려
여소야대 국회 단면 ‘김재수 논란’
일부 관료 정치권 눈치보기 심화될듯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월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청사와 국회를 오가며 보내야 했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11조원의 추가경정(추경) 예산안을 긴급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으나 국회에선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공방전을 거듭하면서 추경 예산안 심사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경안에 대한 심사가 시작되자 유 부총리를 비롯해 기재부 핵심 간부들이 모두 국회 ‘대기 상태’에 놓이면서 경제정책 추진이 일시 중단되는 ‘식물정부’ 현상까지 나타났다. 국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정부가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던 것이다.

정치가 경제를 쥐고 흔드는 양상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수록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많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야당 단독의 해임 건의안 가결과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 파행은 한국정치와 경제 표류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세종청사의 관료들은 이번 사태를 불안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야권이 단독으로 현직 장관의 해임안을 가결시킨 것은 앞으로 야권이 마음만 먹으면 경제정책까지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 관료들 사이에서 정치권 눈치보기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 국정감사 이후엔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이 넘는 내년도 예산안과 법인세ㆍ소득세법 등 세법 개정안이 국회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내년 예산안은 단기적인 경기부양보다는 중장기적인 재정건전성에 초점을 맞추어 편성됐다. 최대 정치적 이벤트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정치권이 각 지역의 개발 예산을 집어넣으려 할 경우 여야간 힘겨루기가 심화될 수 있다.

세법 개정안은 이번 국회의 ‘시한폭탄’이다. 야권에서는 이명박 정부시절에 내린 법인세의 원상회복(인상)을 당론으로 결정하고 이미 20건이 넘는 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이 제때 통과돼야 연말에 예산집행 준비절차를 거쳐 내년초부터 예산을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의 파행으로 내년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경제정책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쟁점법안은 가장 ‘뜨거운 감자’다. 의료업 등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한 서비스산업 발전법, 지역의 특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규제를 한번에 폭넓게 해제해주는 규제프리존법 등 이른바 경제활성화 법안들에 대한 여야의 시각이 아직도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노동개혁 관련법에 대한 입장차는 워낙 커 지난해 9월 노사정 대타협에도 불구하고 노동개혁이 1년째 겉돌고 있다.

이들 법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정부의 경제정책은 심각한 ‘절벽’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다. 이번 김 장관의 해임안 가결에서 보여주듯 여소야대 정국에서의 정책 절벽은 부분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그만큼 소통과 협치의 정신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해준 기자/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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