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죽고, 허기에 죽고…동물에게 전이된 인간의 위기

[헤럴드경제=이수민 기자] 인간의 위기가 동물의 삶을 빼앗고 있다. 강제로 인간과의 삶을 살게 된 동물들은 전쟁, 허기 등 인간을 덮친 재앙에서 무방비한 상태로 희생양이 되고 있다. 석유 부국에서 아사 위기에 허덕이는 국가로 전락한 베네수엘라에서 잡아 먹히거나 버려진 동물들이 최근의 대표적 예다. 이들처럼 인간사의 최전선에서 죽음을 맞았던 동물들의 비극은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인간의 구경 거리였던, 혹은 한 때 가족으로 불렸던 동물들의 삶을 강타했다. 저유가와 치솟는 인플레이션 속에서 당장 자신이 굶어죽을 상황에 처한 인간에게 동물을 살필 여력은 사라졌다.

우리에 갇힌 동물은 보살핌은 고사하고 인간의 식량이 됐다. 지난달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위치한 카리쿠아오 동물원에서는 말의 머리와 갈비뼈 등이 발견됐다. 경찰은 굶주린 주민들이 말을 죽여 살을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 전에도 돼지와 양이 자취를 감췄다. 이 또한 배고픔의 결과로 추정된다.

인간과 함께 배를 곯아 죽은 동물의 수도 만만치 않다. BBC는 지난달 말 같은 동물원에서 6개월 동안 50여마리의 동물들이 아사했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국립공원노동조합 인파케스의 마를렌 시폰테스 위원장은 굶어 죽은 동물들 가운데는 2주 동안 먹이를 제공받지 못한 동물들도 있으며 먹이 부족으로 사자와 호랑이에게 고기 대신 망고와 호박 등을 먹이로 주고 있다고 밝혔다.

반려 동물도 생사의 위기 앞에서는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달 초 인디펜던트가 한 동물 보호 센터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이번 여름 하루에 최대 10마리의 동물들이 버림 받아 길거리 신세가 됐다. 1년 전만 해도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비단 베네수엘라뿐만이 아니다. 전쟁의 위기를 고스란히 받아 내고 있는 동물들도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분쟁 속 폐허가 된 가자지구에서는 지구상 ‘최악의 동물원’이라 불렸던 칸 유니스 동물원이 지난달 말 폐쇄를 결정했다. 한 때 100마리가 넘었던 동물들은 유혈 분쟁이 이어지면서 보살핌을 받지 못해 굶주림과 질병으로 대거 죽어나갔다. 같은 운명을 눈 앞에 두고 있던 15마리의 동물들은 동물원 폐쇄와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요르단 등 다른 나라로 가까스로 이송됐다. 포탄은 인간의 목숨뿐만 아니라 동물의 생명줄도 끊어 놓았다.

말없는 동물들은 과거에도 유사한 비극을 겪었다. 세계 2차대전은 독일 최초의 동물원인 베를린 동물원을 초토화시켰다. 대만 소설가 나디아 허의 저서 ‘동물원 기행’에 따르면 이 동물원의 3715종 가운데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살아남은 동물은 91마리에 불과했다. 가담한 적 없는 인간의 대립에 동물들은 도망칠 새도 없이 죽음을 맞았다.

인간조차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기 어려운 위기 상황을 제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가둬 놓은 동물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 중국 광저우의 그랜드뷰 쇼핑몰 수족관에서 열악한 환경을 견뎌 내며 구경 거리 생활을 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슬픈 북극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피자’라는 이름의 이 북극곰은 최근 동물 학대 논란 속에 화제가 되며 요크셔 야생 공원으로 옮겨져 새 삶을 살 예정이었지만 돈 문제가 결부되면서 이 마저도 무산됐다. 그랜드몰 쇼핑몰 측은 요크셔 야생 공원에 돈을 요구했고, 공원은 이 돈으로 다른 동물을 사서 착취할 수 있다며 거부했다. 합의는 깨졌고 피자는 다시 수족관 안에서 생을 이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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