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은밀, 거시→미시, 野→與…단식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여당의 몰락 징표될까 은밀하게
민주화 투쟁서 對野 압박용으로
정책수정 등 의제범위도 좁아져

사회적 약자의 전유물으로 인식되던 단식에 패러다임 변화가 생겼다. 지난 26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면서부터다.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는 집권 여당 대표의 단식은 생소하다.

이 대표의 단식은 행정권력은 가졌되, 의회권력은 빼앗긴 새누리당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공개형→은밀형, 단식이 집권 여당 ‘몰락’ 징표로 비쳐선 안 돼=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 단식의 함의는 그 형태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지난 2014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6일간 단식 투쟁을 벌일 때도, 지난 2007년 문성현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와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며 단식할 때도 장소는 ‘광장’이었다. 더 많은 사람의 눈에 띄게 드러낸 것.

그러나 이 대표는 전날 단식 투쟁 선언 직후 농성장소를 국회 본청 로비(로텐더홀)에서 자신의 사무실로 바꿨다. ‘반드시 의지를 관철하되 집권 여당 대표로서의 품위는 지키겠다’는 것이다. 강석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체면이 있는데 일반인처럼 길거리에서 단식하기는 좀 그렇다”고 했고, 서청원 새누리당 전 대표는 “(국회를 찾는) 외부 손님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정 의장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면서도, 이 대표의 단식이 집권 여당 ‘몰락’의 징표처럼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거시형→미시형, 민주ㆍ자유투쟁에서 대야(對野) 기선제압으로=단식 의제의 범위가 전보다 다소 좁아진 것도 특징이다. 지난 1983년 5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정권 아래서 정치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 등을 내걸고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는 민주화 투쟁의 기폭제가 돼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이뤄내는 계기로 작용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0년 10월 지방자치제 도입 및 내각제 포기를 요구하며 13일간 단식을 감행, 현재 지방자치제의 토대를 정립했다. 단식은 주요 정치사를 이끌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단식 의제는 미시화ㆍ개별화하는 추세다. 2003년 임종석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정부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해 13일간 진행한 단식, 2005년 강기갑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 쌀 협상에 반대해 20일간 진행한 단식이 대표적인 예다. 이 외에도 2010년 양승조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은 세종시 수정안 추진에 반대해 22일간 단식투쟁했다.

이슬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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