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첫날] 헷갈려…헷갈려…헷갈려…“일단 하지마라”

직무 관련성 법원內 다른 판단

부정청탁 유형 놓고 논란 소지

출입기자 주차장 이용도 혼란

“김영란법이 발효되면서 저희 회사 주차장 장기 등록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해석이 많으나 다른 회사 대응을 고려할 때 우리도 당분간 기자들의 주차장 장기 이용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27일 오후 기자에게 한 대기업 홍보실에서 보내온 문자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28일 시행되면서 그동안 출입기자에 허용하던 이 회사 본사 주차장 이용을 제한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날 서울시청도 출입기자들에게 주차장 유료이용 방침을 전달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됐지만 대부분 정부부처나 대법원 등 사법기관과 지자체 등에선 출입기자의 주차장 이용까진 제한하지 않고 있다. 같은 날 시행되는 법이지만 기업마다 기관마다 적용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됐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한쪽에선 가능한 것이 다른 쪽에선 불가능한 경우가 생긴다. 법 전문가들조차 판례가 쌓여야 기준이 세워지지 현재로서는 어떤 게 정확한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다고 한다.

가장 큰 논란은 ‘직무 관련성’에 대한 판단이다. 김영란법은 알려진 대로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 및 의례 목적으로 3만원(식사), 5만원(선물), 10만원(경조사비) 한도 내에서 주고받는 것을 허용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대가, 직접적인 업무관련성이 있는 관계라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국민권익위원회의 입장이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주는 커피 한잔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건 이 때문이다. 성적을 담당하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직무관련성이 상당히 높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법관들을 상대로 한 설명자료에서 직무관련성을 따질 때, “사적인 친분관계 및 평소의 교류 정도, 공직자 등이 해당직위를 보유하지 않았더라면 공직자 등에게 해당 금품 등을 제공하지 않았을지 여부, 사회 일반으로부터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지 등이 판단기준이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해석이라면 업무관계와 친밀감의 경계가 모호한 무수한 사례에서 혼란이 불가피하다. 공무원과 민간기업 대관부서 직원과의 관계는 직무관련성이 높지만, 둘 사이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친구 사이일 수 있다.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가 점수를 평가하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사제 간의 정’을 나누는 관계일 수 있다. 존경하고 스승에게 커피 한잔을 주는 것을 처벌하는게 타당한가 하는 논란이다.

‘부정청탁’의 개념도 혼란스럽다. 김영란법에서는 부정청탁의 유형을 14가지로 제시했다. 인허가 처리 개입 요청, 인사에 영향, 각종 포상 우수기관 선정 관여, 입찰 등 직무상 비밀 누설 요구, 각종 평가 조작 등이다.

그런데 이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 무수한 요청들이 오고갈 수 있다. 예컨대 공연 기획자가 홍보 목적으로 기자들을 초청해 5만원이상 공연을 관람하도록 하고 기사를 실어달라고 한 경우는 부정청탁일까, 마케팅 활동일까. 공연기획자는 자신의 홍보 필요에 의해 공짜 표를 나눠준 것이고, 기자는 그렇지 않으면 보지 않았을 공연을 보고 소개하는 글을 썼을 뿐이다.

법 전문가들은 무수한 이런 사례들에 대해 질문하면 현재까지도 한결같이 “잘 모르겠으면 일단 하지 말아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판례가 쌓일때까지 시범 케이스로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조언이다. 

박일한 기자/jumpcut@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