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수라’ 정우성, “열정의 시간을 거꾸로 돌린, 치열한 현장이었다”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그는 계속해서 “치열하다”라는 말을 썼다. 감독과의 관계도, 상대 배우와 연기를 주고받는 것도 치열했다고 말했다. 밀도 높은 현장은 당연히 치열했다. 감독도 치열하게, 또 고집스럽게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했기 때문에 괜찮은 영화 하나가 나온 것 같다고 자신했다. 영화 ‘아수라’에서 그저 살기 위해 치열하게 발버둥치는 인물인 ‘한도경’을 연기한 배우 정우성(43)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잘생김’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적수가 없는 사람인데, 최근 부쩍 “나도 내가 잘생긴 것을 알고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예능프로그램(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정준하의 표정을 코믹하게 따라하기도 하면서 조금 더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 개봉을 하루 앞둔 그는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아직 대중들 앞에 뚜껑이 열리기도 전인데 좋은 반응을 기대하는 듯 했다.

“VIP 시사회 이후에 동료, 선후배 영화인들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더라고요. 부분적인 평가보다 부럽다는 건 작업 전체에 대한 인정이니까, 다들 기분이 좋아서 마음을 놓은 것 같아요. 이정재 씨도 ‘개봉하는 한두달에 남는 영화가 아니라 앞으로 10년, 20년 계속해서 회자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고. 그러면서 부럽다고 하더라고요.”

‘아수라’는 1997년 ‘비트’로 정우성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타로 만든 김성수 감독과의 네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태양은 없다’(1999), ‘무사’(2001) 이후 김 감독과 15년여 만에 다시 만났다. 그는 그런 의미부여보다 작품의 완성도에 집중했다고 이야기했다.

“개봉도 하기 전에 여러 개인적인 의미부여를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감독님과 오랜만의 작업을 잘 해내야지’ 하면서 그 의미에 도취해 작업을 즐기기보다는, 정말 치열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동료 배우들도 김성수 감독의 작업스타일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작업이 끝난 후에 모든 배우가 좋아하는 감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김성수 감독은 1990년대에 밀도 높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작업 스타일로 이름이 높았다. 이 작업 방식이 정우성에게는 ‘달콤한 추억’이었는데, ‘아수라’로 “열정의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 같았다”고 했다.

“현장이 힘들다는 건, 그만큼 표현하려 하는 깊이가 깊다는 거예요. ‘자, 세트 준비됐지? 대사 이거 해, 거기 필요한 감정은 그 정도니까 그렇게 찍자’ 이런 게 아니라, 세트 디테일에도 하나하나 신경을 쓰면서 현장에서 타협하는 것 없이 그 세계관 안의 공간과 공기, 그 감정들로 이끌게끔 하는 작업 스타일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영화가 산업화되고 제작횟수가 많아지면서, 검증 안 된 누군가들이 자꾸 우후죽순 영화를 만들 게 되었잖아요. 그래도 예전의 열정 있던 현장을 고집스럽게 이끌어가는 선배가 있으니 후배들이 보고 느끼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아수라’에서 그는 ‘생존형 비리 형사’였다. 악덕 시장의 뒤를 봐주는 일을 하다 점점 빠질 수 없는 구렁텅이의 중심으로 빨려들어간다. “끝까지 캐릭터에 매료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한 그는 “캐릭터보다는 세계관이 매력적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캐릭터에 대한 연민도 전혀 없었어요. 캐릭터 하나하나가 관객들에게 교훈을 주는 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숨겨놓은 폭력을 눈으로 보이게끔 하고 그게 얼마나 참혹한지를 보여준다는 이 영화의 세계관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안남(영화 속 가상의 배경)이라는 도시는 비도덕과 비양심, 폭력이 자연스런 곳이잖아요.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고자 인간이 어떻게 적응해 나가는지 보여주는 영화예요.”


그 이외에도 ‘아수라’ 캐스팅은 화려하다 못해 ‘어벤져스’ 급이다.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정만식까지 연기파 배우들이 뭉쳤다.

“애정이 가는 상대들이죠. 서로의 작업 방식에 대한 존중이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절대 상대를 ‘배려’하지는 않아요. 이를 악물고 치열하게 했을 때 형성되는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달되니까요. 영화에서 모든 인물의 감정이 격하잖아요. 결과물이 짜릿하게 나오니 서로 흥이 되고 신이 나고, 존중은 더 커지고, 그래서 그게 애정이 되고…. 그랬던 거죠.”

지난 겨울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배우이자 제작자로 나섰던 그는 이제 ‘연출자’로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장기적인 플랜 안에서 자리잡고 있는 연출 타이밍이, 자연스럽게 거의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예고했다. 시나리오 하나는 작업을 끝마쳤고 하나는 세 번째 검토를 시작할 단계라고 했다.

“요즘 ‘뭘 잡고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작업해 놓은 건 꽤 있지만 ‘입봉작’으로 그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요. 사람들이 정우성의 입봉작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배우로서 작품을 고를 땐 나름의 가치판단으로 고집스럽게 한 게 있지만, 감독으로서는 그 가치판단을 새로 해야 하니까요. 소통에 대한 기준도 만들어야 하고…. 그런데 자꾸 모든 이야기들이 비상업적인 느낌이 들어서 걱정이에요. (웃음)”


동료 배우 이정재와 최근 차린 매니지먼트사 ‘아티스트컴퍼니’에 대한 포부도 밝혔다.

“배우라는 직업이 만나는 사람도 한정적이고, 선택과 관계에 대한 시행착오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 시행착오들에 대한 조언을 충분히 해 줄 수 있는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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