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김지운 감독 “아카데미상 후보 생각해본 적 없어”

김지운 감독

“영화 ‘밀정’은 전반에 걸쳐 희망과 진전이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스파이 장르에 천착한 듯 보이지만 인간 본성과 내면에 방점을 둔 작품입니다.”

‘한국 첩보 누아르’의 새로운 지평을 연 김지운(52) 감독이 27일 영화 ‘밀정’ 홍보차 LA를 방문했다. 이 영화는 지난 23일부터 북미 지역 40여 개 도시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그는 이날 CGV LA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동안 밝은 얘기보다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주로 표현했다면, ‘밀정’은 희망과 진전을 얘기했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기존 영화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녹아있다”면서 “첩보물에 천착한 듯 보이지만,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밀정’은 1920년대 말 일제 강점기 당시 주요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간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담은 ‘콜드 누아르’다(※이 용어는 김 감독이 만들었다.)

송강호와 공유, 한지민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함께 이병헌, 박희순과 같은 초호화 게스트들의 특별출연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특히 그의 이번 LA 방문은 단순히 ‘밀정’ 홍보에 맞춰진 것은 아니다. ‘밀정’은 영화진흥위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 대표작으로 선정하면서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 대표작으로 선정됐다는 얘기를 꺼내자 김 감독은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솔직히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생각한 바가 없어요. 높은 장벽인 데다가 전례도 없었잖아요. 영화진흥위에서 좋게 봐줘 뽑아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미 지역에서 호평이 나와 기대를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정작 나는 별로….”

하지만 그는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몇 안 되는 한국 영화감독이다. 게다가 ‘밀정’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워너브러더스가 한국에서 제작한 첫 영화다.

‘밀정’ 개봉을 앞두고 버라이어티지는 “1온스의 군더더기도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 극찬했고, 할리우드 리포터는 “‘밀정’의 열차 시퀀스는 그 진가가 돋보이는 장대한 장면”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실제로 ‘밀정’은 베니스 국제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 산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런던 아시아영화제에 이어 미국 판타스틱 페스트와 아시안 월드 영화제까지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이에 김 감독은 “한국 역사를 다룬 영화여서 외국 비평가와 언론, 관객들이 좋은 평가를 할 줄 몰랐다. 의외의 호평이 나와 좀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다면 한국 영화에서 최초의 일이고, 한국 영화의 미학적·산업적 성취를 입증하는 것”이라며 일말의 기대감을 놓지는 않았다.

‘암살’(최동훈 감독)·’아가씨’(박찬욱 감독)와 함께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공교롭게도 흥행에 성공했다고 하자 김 감독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고 웃었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불행했고 갈등구조도 첨예했던 시기입니다. 국내에서도 친일과 항일, 중간지대 등 부딪치는 지점들이 많았아요. 거기서 드라마틱한 소재들이 나온 겁니다. 그동안 그 시대를 천편일률적으로 다뤘다면 지금은 소재가 풍부해졌고 감독 색깔에 따라 다양한 영화들이 나오고 있어 고무적입니다.”

김 감독은 ‘경색된 한일 관계가 작품 선정 등에 영향을 줬나’라는 질문에 “작품 선정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런 감정들이 강화된 부분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오히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그런 감정에 휩싸인 듯 보였다”면서 “한일 관계가 경색되고 국민이 바라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자 영화에 감정이입을 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송강호와 이병헌의 연기를 극찬했다. 의열단원 김우진 역을 맡은 공유를 캐스팅한 것도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친일파에서 독립투사로 거듭나는 이정출 역의 송강호는 “경계에 선 회색주의자를 다양한 스펙트럼과 깊은 내면의 세계로 묘사했고, 표정 연기를 훌륭하게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이병헌은 “의열단장 정채산이라는 인물의 무게감을 본인이 가진 매력과 카리스마로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이병헌 씨는 자기가 출연한 장면을 장악할 줄 아는 배우”라고 했다.

공유를 캐스팅한 이유를 묻자 “이정출 역으로 송강호 씨를 캐스팅한 뒤 대조되는 신세대 리더가 필요했다”면서 “공유의 순수한 이미지, 스마트한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

“공유가 맡은 김우진은 영웅적 캐릭터가 아니라 임무를 위해 자신을 추동하고 담금질하는 열정적이고 차가운 인물이에요. 공유 씨가 적합한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후반부에서 작전에 실패한 뒤 김우진의 정서와 감성을 표현하는 연기가 필요했는데 공유 씨가 기대 이상으로 잘해줘 고마웠죠.”

영화의 ‘압권’인 기차 시퀀스와 관련해서는 “좁은 공간에서 갈등 요소를 끌어내는 것을 잘한다”면서 “기차 장면은 은유적으로 시대의 광폭성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기 작품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김 감독은 “‘인랑’이라는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을 한국 배경으로 재구성한 실사영화”라며 “사이파이(Sci-fi) 누아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인랑’은 1960년대 일본 가공의 무대를 배경으로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배제하고 살아가는 진압 부대의 청년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김 감독이 2012년부터 준비해온 작품으로 제작비 100억 원이 투입되는 대작 프로젝트다.김 감독은 이날 저녁에는 CGV LA에서 미국 주요 대학 영화학과 교수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상영회에 참석했다.

영화학도들은 김 감독에게 “기존 영화와 달리 희망적이다”, “배우 송강호와 이병헌을 자주 캐스팅하는 이유”,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영화 연출할 때 차이점” 등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김 감독은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하면서 “할리우드 시스템에서는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다”면서 “따라서 장면마다 어떻게 찍을까 빨리 고민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이게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그는 이어 “어떠한 장면을 찍을 때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영화 일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면서 “할리우드에서 배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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