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11소송법’ 재가결에 뿔난 사우디, 965억 달러 美 국채 팔아넘기나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현지시간) 아랍 은행권에서 사우디가 9ㆍ11소송법을 재가결시킨 미 의회에 반발해 실제로 미 국채를 처분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델 알주바이르 외무장관은 지난 3월 워싱턴DC를 방문해 “9ㆍ11소송법이 의회를 통과하면 사우디가 보유하고 있는 7500억 달러(약 860조 원) 규모의 미 재무부 채권을 모두 처분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미 의회가 9ㆍ11 소송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무력화하자 아랍 은행권은 미국에 대한 사우디 투자가 급감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익명의 아랍 은행권 직원은 FT에 “사우디가 미국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억제하고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처분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왼)이 지난 6월 미국을 방문해 존 케리 미 국무장관(오)과 회담했다. 알주바이르 외무장관은 9ㆍ11소송법이 가결될 경우, 사우디가 보유한 미 국채를 처분하겠다고 3월 밝힌 바 있다. 이후 케리 국무장관은 지난 5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알주바이르 외무장관은 당시 미 국채 보유액을 처분하겠다는 발언을 철회했지만 “소송법이 가결되면 사우디 투자자들의 (미국에 대한) 믿음이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게티이미지]

한 사우디 은행 관계자도 “사우디가 앞으로 투자에 더 신중하게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장기적으로 이는 미국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우디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미국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걸프권 펀드매니저가 밝혔다.

지난 3월 알주바이르 외무장관은 9ㆍ11소송법이 입법화되면 7500억 달러에 달하는 사우디 보유 미 국채를 처분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 5월 미 재무부는 41년 만에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미 국채 보유액을 공개했지만, 그 금액이 예상보다 적어 사우디가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달러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미 재무부가 당시 공개한 사우디의 미 국채 보유액은 1168억 달로(약 137조7072억 원)로, 중국의 1조3000억 달러와 일본의 1조1000억 달러의 10% 수준에 그쳤다.

사우디 금융인들은 사우디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 규모가 최소 1700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들은 사우디 정치인과 왕가 대부분이 미 국채 이외의 유형 자산으로 달러화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가 걸프협력기구(GCC) 6개국의 맏형이자 수니파 아랍권을 대표하는 지위를 이용해 이슬람 국가들까지 동원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압둘라티프 알 자야니 GCC 사무총장은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9ㆍ11소송법이 “국가 관계의 기초와 원칙을 위반했다”고 표명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 대학의 압둘칼레크 압둘라 중동전문가는 “GCC회원국이 목표물이 되면 주변 국가들이 함께 맞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GCC국가들이 9ㆍ11소송법을 사우디뿐만 아니라 아랍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9ㆍ11 소송법은 미국 본토를 겨냥해 발생한 테러 사건에 한해 테러 피해자들이 책임소지가 있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9ㆍ11테러는 테러단체 알카에다에 의해 발생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원들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자였기 때문에 9ㆍ11테러 피해 유가족들은 사우디를 상대로 미 법정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사우디는 알카에다에 테러자금을 지원한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사우디와 미국 정부 측은 사우디가 테러자금을 지원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과 9월 상원과 하원을 각각 만장일치로 통과한 이 법안이 “미국의 이익을 해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28일 의회에서 법안을 재가결하자 오바마는 의회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며 “전 세계에 파병돼있는 미군 병사들이 ‘상호적인 법률들’(reciprocal laws)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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