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석의 영화X정치]‘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와 ‘내로남불’의 정치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유부남인 한 영화감독이 낯선 여인을 만나 1박2일간 겪는 애정행각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상영과 강연차 경기도 수원에 내려간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 분)와 그가 현지에서 만난 낯선 여인 윤희정(김민희 분)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말하자면 1, 2부로 나뉘어 있다. 상황과 인물은 똑같이 반복되는데 배경도, 인물들의 언행도, 일어나는 사건도 약간씩 변형된다. 1부나 2부나 모두 함춘수가 윤희정에게 소위 ‘작업’을 걸고, 윤희정이 이에 반응하는, 남녀간 ‘수작’이 내용의 핵심이다.

마치 음악에서 멜로디가 비슷한 소절이 이어지듯, 1부와 2부는 똑같은 인물과 상황에서 사건과 배경, 앵글만 약간씩 변화를 준다. 여기서 ‘아주 약간씩’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똑같은 시간, 똑같은 공간이라도, 인물과 사건, 배경의 미세한 변화들이 몰고 오는 정조의 변화는 크다. 1부와 2부에 채워진 공기는 확 다르다. 함춘수가 윤희정에 환심을 사기 위해 좀 더 유난을 떨고 과한 너스레를 보여주는 1부는 좀 더 들떠 있고 장난스러우며 수치스럽고 냉소적이다. 2부도 함춘수가 윤희정의 마음을 얻기 위해 수작을 부려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두 인물 모두 조금 더 신중하고 솔직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결론적으로 1부에서 함춘수의 ‘작업’ 결과는 좀 참담하고 씁쓰레한 편이다. 반면 2부에서 두 남녀의 관계는 좀 더 애틋한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아무 설명 없이, 아무런 암시 없이 제시된 1, 2부의 관계는 도대체 뭘까. 총 4가지의 경우의 수로 해석가능하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4가지 경우의 수

①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1부와 2부는 시간적인 선후로 연결된 관계다. 말하자면 함춘수의 과거와 현재의 사랑(에대한 태도)이라는 것이다. 그랬을 때 1부의 제목은 ‘그때는 틀렸다’로 붙일 수 있고, 2부는 ‘지금은 맞다’로 될 수 있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현재는 로맨스이고 과거는 불륜이었다는 의미이겠다.

②영화 ‘슬라이딩 도어스’처럼 ‘만약에(if)’로 연결된 관계일 수 있다. “만일 함춘수가 이랬더라면” “그때 윤희정이 이렇게 말했다면” “그때 눈이 내렸더라면” 등 뭔가가 달라졌다면 결과, 즉 그들의 관계와 사랑은 어떻게 변했을까에 대한 얘기라는 것이다. 함춘수, 곧 남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떤 여자냐에 따라 ‘작업’의 기술도 달라지고, ‘작업’의 기술에 따라 결과도 달라진다는 것.

③정재영, 김민희 등 같은 배우가 같은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사실은 별개의 영화를 두 편 붙여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즉 같은 제목, 같은 장소에서 같은 감독이 같은 배우로 영화를 두 편 찍어서 붙인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1부의 시작에도 영화의 제목이 뜨고, 2부가 시작될 때도 같은 타이틀이 올라간다. 이럴 경우 1부와 2부의 인물은 같은 배우가 같은 극중 이름으로 연기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캐릭터이다. 이 때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도 달라진다. ‘(나의) 지금은 맞고 (너 혹은 그의) 그때는 틀렸다”가 된다. 다른말로 하자면 ‘내로남불’이다. 즉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지금 하는 사랑은 로맨스, 네가 그때 했던 사랑은 불륜’.

④1부와 2부는 동일한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의 버전일 수 있다. 같은 일을 겪었지만, 1부처럼 기억될수도, 2부처럼 기억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니면 1부와 2부 중 하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나머지 하나는 실제와는 다른 함춘수의 기억일 수도 있다.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같은 사건을 겪거나 목격한 사람도 기억이 다른 경우는 흔한 일이다. 또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이 갈수록 기억이 변형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도 하고, 기억하고 싶은대로 기억하기도 한다. 반대로 낭패인 일이나 수치스러운 기억만 머리속에 남는 경우도 있다. 


▶‘내로남불’의 정치학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관객의 자유일 것이다. 다만 4가지의 해석을 모두 정치인들에게 대입하면 흥미로운 비유가 나온다. 함춘수가 윤희정의 환심을 사려 하듯 이성의 마음을 얻는 일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1부에서 함춘수가 윤희정에게 ‘작업’을 거는 과정은 다소 냉소적으로 묘사된다. 윤희정에게 함춘수가 지나치게 호들갑스럽고 과장된 언사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1부에서의 함춘수는 윤희정에게 진지한 관계보다는 ‘하룻밤’을 더 원하는 것처럼 조급하고 경박하게 보이기도 한다. 수많은 여성편력의 또 다른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는 유부남인 사실조차 밝히려 하지 않았다. 반면 2부에서의 함춘수는 조금 더 솔직하며 신중한 듯하다. 윤희정에 대한 마음이 1부보다는 더 진심처럼 느껴진다. 정치적으로 비유하자면 1부에서의 함춘수는 다만 선거 때의 ‘표’만 노리는 정치인이라 할 것이다. 이와 비교하자면 2부에서의 함춘수는 비교적 진실된 정치인,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정치인에 조금 더 근접해 있다. 영화에 대한 4가지의 해석을 정치인들의 태도에 비유해보자.

①흔히 정치인들은 사과도 잘 한다. 다만 먼 과거일수록 고개는 숙이기 쉽고 최근일수록 어렵다. 이 때 사과의 목적은 하나다. 반성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입장과 행보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 때는 나의 행동은 불륜이었지만 지금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야당이었을 때 국정에 협조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사과한다”. “우리가 여당이었을 때 다수의 횡포를 부렸던 것은 잘못됐다”. 이 말의 속뜻은 이렇다. “지금은 우리가 여당이니 야당은 국정에 협조해달라” “지금은 우리가 소수이니 다수인 너희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횡포다”

②“만약에”는 특히 선거가 끝난 후, 패배한 정당에서, 대개 비주류 분파가 자주 사용하는 수사다. 경쟁세력들을 비판하고 당권을 교체하기 위해 주로 활용된다. 지난해 4ㆍ29와 10ㆍ28 등 두 번의 재ㆍ보궐 선거에서 패배 한 후의 문재인 당시 대표를 비롯한 당내 주류를 향한 비주류의 목소리였다. “친노세력의 패권이 아니었다면…(승리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지난 4ㆍ13 총선 후에 새누리당도 마찬가지였다. “친박패권이 아니었다면…” “공천파동, 막말파동, 옥쇄파동이 아니었다면” 등의 목소리가 당내에서 빗발쳤다.

③‘지금 나는 맞고, 그때의 너는 틀리다’. 가장 흔한 ‘내로남불’의 정치적 수사다. 여야 정권교체의 경우, 국회 다수당 교체의 사례에 가장 빈번하다. 4ㆍ13 총선으로 여소야대가 된 후 극명하게 드러났다. 처음에는 국회 국회의장 선출과원구성 협상에서 여야는 과거 상대당의 논리를 현재의 자당 논리로 가져왔다. 새누리당의 탈당파 복당 이전 제 1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다수당이니 국회의장이 가져와야 한다”고 했고, 새누리당은 “여당이 차지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다수당이 뒤바뀌면 쟁점에 대한 국회의 다수 의결에 대해 소수당은 흔히 “날치기”로 묘사하기 마련이고, 의결에 불복해 실력행사를 하기도 한다. 한때 “날치기”라며 비난했던 이들이 다수당이 되면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하고, 제 1당일때 “국회에서 정해진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던 정당은 제 2당이 되면 농성과 시위, 점거 등 물리력 행사를 하기도 한다.

④ 과거 기억의 왜곡 또는 망각에 따른 입장번복, 현재 행보의 합리화도 정치인들이 흔히 보여주는 모습 중의 하나다. 정계 은퇴 선언을 번복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잘 한 것만 기억하고 과오는 잊는 것도 예사다.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을 왜곡해 선전하는 것도 드물지 않다. 정치인들에게 과거의 발언은 뒤집히기 위해 존재한다고 할 정도로 지나간 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늘 상황논리가 뒤따른다. 그러나 국민이 기억하는 과거와 정치인들이 기억하는 과거가 다를 때가 많다.

청와대와 여당, 야당, 국회의장이 극심한 대치를 이루는 정국이다. 국민들의 한숨은 깊어만 가는데, 정치권은 서로 물러설 길 없는 ‘치킨게임’만 벌인다. 그들은 다 이야기한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고. 그러나 국민들에겐 ‘지금도 틀렸고, 그때도 틀리다’. 정치의 맞고 틀리고를 결정하는 유일한 심판자는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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