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 추모행진…경찰과 대치하다 해산

[헤럴드경제]고 백남기씨를 추모하는 집회와 행사가 1일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경찰청을 향하려던 주최 측은 경찰측과 대치했지만 무력충돌 없이 해산했다.

백남기 투쟁본부는 1일 오후 4시 대학로에서 주최측 추산 3만명(경찰 추산 7000명)이 모인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를 열고 백씨 사망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했다.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백씨 시신을 부검하려는 경찰 등 수사기관을 비판하며 ‘부검 대신 특검하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백씨의 딸 민주화씨는 “사인의 증거가 넘쳐나는데 어느 자식이 아버지 시신을 또다시 수술대에 올려 정치적인 손에 훼손시키고 싶겠나”라며 “절대로 아버지 두 번, 세 번 죽이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오후 5시께 대학로를 출발해 종로5가를 거쳐 종각역 사거리까지 행진한 다음 오후 6시20분께 원래 행진 경로였던 모전교 방향으로 좌회전하는 대신 종로구청앞 사거리로 진출을 시도했다.

당초 투쟁본부는 종로구청앞 사거리에서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까지 행진하겠다고 신고했으나, 경찰은 이를 불허했다.

경찰은 병력을 동원해 종로구청앞 사거리에서 시위대를 막아섰고, 시위대는 사거리 전차로를 점거하고 아스팔트 바닥에 백씨를 추모하는 의미의 흰 백합을 그리고풍물패를 동원한 살풀이 등 문화제 행사를 진행했다.이어 이들은 오후 7시30분께 시위대 선두에 마련한 헌화공간에 백합을 올리며 추모를 한뒤 해산했다.

경찰은 불법 집회·시위를 중단하라며 2차에 걸친 해산명령을 했으나 이날 연행된 사람은 없었다.

곧바로 시위대는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으로 이동해 ‘세월호 900일 문화제’에 합류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014년 4월16일부터 계산해서 꼭 900일째를 맞아 열린 이날 문화제에는 주최 측 추산 5천명(경찰 추산 2천명)이 참석해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세월호 특별법 개정 등을 주장했다. 또 9월30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활동이 종료된 것을 ‘강제해산’이라며 성토했다.

백남기 추모대회에 앞서 대학로에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전국교사대회’와 민주노총 등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의 ‘노동개악·성과퇴출제 폐기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부의 교원능력개발 평가 시행과 정부의 친기업적 노동정책을 폐기할것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인 뒤 백남기 추모대회에 합류했다.

한편 서울대 의과대학 학생회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대 의과대학 동문 365명이 연명한 성명서를 공개했다.

서울의대 동문들은 성명에서 “후배들이 지적했듯이 (백씨의 사망을 ‘병사’로 기록한) 고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는 통계청과 대한의사협회에서 제시한 원칙에 어긋난다.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해 사망했으면 ‘외인사’로 작성하도록 배웠다”며 “최고의 공신력을 가진 기관일수록 이러한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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