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금감원 엇박자 행보에…‘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 증폭

면죄부 판결-당국·정치권은 지급압박…소비자 혼란

대법원의 면죄부에도 불구하고 자살보험금을 둘러싼 논란이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대법원은 최근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지만, 금융당국은 이와 상관없이 미지급 보험사에 대해 제재를 가하겠다고 초강수를 뒀다. 정치권도 자살보험금 특별법을 만들겠다며 보험사 압박에 가세했다.

소비자 역시 혼란에 빠졌다. 같은 약관을 적용했음에도 어느 보험사에 가입했느냐에 따라 자살보험금을 받을 수도 있고 못받을 수도 있어 새로운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금감원의 초강수 이유는…괘씸죄?=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이 행정제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은 보험사가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했어야 마땅하다는 이유에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은 민사적 책임이 없다는 확인일 뿐이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소멸시효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보험사가 보험가입 후 2년이 지났으면 자살해도 재해사망보험금(일반사방보다 2~3배 높음)을 지급한다고 명시해 놓고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한 채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보험업법을 어긴 행위라는 것이다.

즉 보험사들이 약속대로 지급해야할 보험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이를 속이고 일부만 지급하다가 소멸시효를 넘겨버렸기 때문에 약관에 따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선동(새누리당)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도 받을 수 있도록 ‘재해사망보험금 청구기간 연장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서 정치권까지 압박에 가세하고 있다.

▶동부생명 지급 결정, 나머지 보험사는 어쩌나=삼성과 교보, 한화 등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 결정을 미루는 가운데 동부생명은 대법원 판결 직후 자살보험금을 전액(140억원)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부생명은 “소멸시효 인정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인 27일에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면서 외부에 알리지 않았을 뿐 대법원과 상관없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소멸시효 경과건에 대한 자살보험금 지급을 유보하고 있는 보험사는 교보ㆍ삼성ㆍ알리안츠ㆍ한화ㆍKDBㆍ현대라이프생명 등 6개사로 줄었다.

동부생명이 대법원 판결이 나자마나 이같은 결정을 밝히면서 나머지 보험사들은 더 곤란한 입장이 되고 있다.

미지급 보험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방침과 배임 등을 모두 고려해 지급 여부를 자체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아직 판결문이 안 나온 상황에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말을 아꼈다.

교보생명 자살보험금 관련 판결이 내려진데 따라 비슷한 내용으로 대법원에 올라가 있는 삼성, 한화, 알리안츠 등도 빠른 시일 안에 같은 판결이 내려질 전망이다.

▶소비자들 대혼란, 형평성 논란=한편 자살보험금을 둘러싼 지루한 논란 속에 또 다른 우려도 고개를 든다.

만약 나머지 6개 보험사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기로 결정할 경우 소비자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약관을 적용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사에 따라 지급받지 못했을 경우 ‘형평성 ’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런 이유 때문에 금융당국도 보험사들에게 자살보험금 지급을 압박하는 것 같다”면서 “보험사대로 입장이 달라 논란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희라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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