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가을, 말 위에서 길을 잃다

-너무도 달라진 몽골, 그리고 몽골 대초원 승마와의 최고경험

-자작나무 숲과 게르에서의 하룻밤, 쏟아지는 별들과의 조우

[헤럴드경제=윤정희(울란바토르) 기자] 2000년 6월 7일. 당시 몽골의 모습을 떠올려보려 애를 썼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는 생소했던 아시아 초원의 나라, 몽골을 처음 찾았던 것이 그때였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직항로가 없었고, 중국 베이징을 거쳐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륙간 열차를 타고 스물여덟시간을 이동해 몽골로 들어갔다. 사회주의를 갓 탈피한 회색빛 도시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16년이 흐른 몽골(Mongolia)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인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선 김해공항에서도 에어부산이 직항로를 개설해 3시간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300만 인구의 3분의1 이상이 모여 사는 수도 울란바토르(Ulan Bator). 잘 지어진 호텔들과 글로벌 기업들의 반질거리는 빌딩들이 도심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러 대학이 모여있는 거리는 몽골 젊은이들로 활기가 묻어났다.

6월부터 8월이 몽골여행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7월에는 몽골 최대 축제인 ‘나담 축제’가 있어서 가장 성수기로 꼽힌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몽골의 가을을 경험하기 위해 9월말로 일정을 잡은 터였다. 낮에는 영상 15도, 밤에는 4도까지 떨어지는 기온 편차가 있었지만,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였다.

울란바토르에 도착해 가장먼저 찾은 곳은 자이승 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툴강(Tuul River)을 따라 노랗게 물든 단풍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사진=몽골에서의 승마는 명불허전이다. 대초원과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서의 승마는 낭만과 여유를 선물한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약 60㎞ 떨어진 테를지 국립공원이 목적지였다. 마이 버킷리스트 서열 3번이 “몽골 대초원을 말을 타고 달려보기”였기 때문이다.

몽골의 승마교습은 국내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말을 처음 타보는 나에게 승마를 위한 사전 교육은 단지 차량을 타고 이동중에 들었던 여성 가이드의 몇가지 주의사항이 전부였다. 말의 왼쪽에서 기승하고 내리고, 뒷발차기를 조심하며, 고삐를 당기면 선다는 것 정도였다.

여성 가이드의 말이라 미덥지도 못했고, 당연히 전문 조교의 시범과 사전 강습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곧 사라졌다. 승마장에서 기다리던 몽골 마부들은 곧바로 우리 일행을 말안장 위에 올려놨다. 당혹스러웠다. 말을 듣지 않는 말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귀찮은 초보 승마인을 흔들어 떨어뜨릴 것 같은 공포감도 생겼다.

이내 모든 일행이 말위에 올라탔고, 마부의 휘파람 소리에 맞춰 말들이 대열을 이뤄 출발했다. 허벅지엔 잔뜩 힘이 들어갔다. 오솔길을 지나 시냇가에 다다랐지만 말들은 멈추지 않았다. 말을 탄채로 흐르는 물을 가로질러 건넜다. 당혹스럽지만 멋진 순간이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장면에 내가 있었다.

10여분이 흐르면서 몸이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박자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자 훨씬 편안하게 말을 탈 수 있었다. 온통 하얀 모습으로 이국적인 멋을 풍기는 자작나무 숲에는 노랗게 물든 낙엽이 바람에 따라 흩날렸다.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에 매료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순간 시간이 멈춰버렸다. 길을 잃었다.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물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동공으로 흘러들어 가슴에 내려앉았다.

숲을 빠져나오자 이내 가늠키 어려운 대초원이 펼쳐졌다. 조금씩 스피드를 높이고 싶었다. 고삐를 느슨하게 풀면서 조심스레 “추~”하고 소리쳤다. 가이드의 설명대로라면 말에게 달리라는 신호였지만, 무시당했다. 다시한번 “추~”하고 조금더 세게 명령했다. 하지만 역시 무시 당했다. 대여섯번 “추~”를 외쳐댔더니 말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멋진 순간이었다. 말위에 앉은 채로 대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사진=몽골에서의 승마는 명불허전이다. 대초원과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서의 승마는 낭만과 여유를 선물한다.]

잠시후, 숨죽여 뒤따르던 여성 한명이 힘차게 말을 몰면서 뛰쳐 나갔다. 몽골인 가이드 어유나(30ㆍ여)씨였다. 역시 몽골인이었다. 그녀를 무시했던 마음이 곧바로 경외스런 형태로 바뀌었다. 너무나 멋진 모습이어서 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2시간여 승마시간이 끝났고 아쉬움이 밀려왔다. 첫 승마 경험으로 긴장하고, 뭉쳤던 다리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잠시 자작나무 숲에서 산책을 즐겼다. 은은한 나무향이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버스에 올라 하룻밤 묵을 ‘몽골 게르(Mongol Ger)’로 이동했다. 양가죽으로 지어진 둥근 게르는 중앙에 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벽을 따라 놓인 침대 3곳 중 한군데에 짐을 풀었다. 저녁으로 몽골 전통요리인 허르헉(horqhog)이 준비됐다. 달궈진 돌과 비타민나무잎과 열매, 감자랑 당근 야채를 손질된 양의 몸통에 넣고 오랜시간 쪄낸 요리였다. 특유의 양고기 냄새를 즐길 준비만 됐다면, 몽골요리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저녁무렵 구름에 가리웠던 하늘이 새벽이 되면서 무수한 별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많은 별님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지평선 조금 위에 떠오른 북극성을 찾아내고 초원의 별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카메라를 고정하는 이들도 보였다. 쏟아질까 두려운 마음으로 별을 세다보니 어느덧 몽골 초원의 밤하늘도 깊게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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