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섬을 낳았다…‘오감만족’ 가을부산

신석기유적지·고인돌등 유적 품은 가덕도
추억소품이 비치된 록봉박물관서의 시간여행

아미산 전망대서 바라보는 을숙도 마음 뻥뚫려
낙동강변 ‘자전거 투어’ 西부산 명소로 두각

“어둠이 등대를 세우듯 바람이 섬을 낳았다/ 천진한 신석기의 바람이 불면 꽃으로 뒤덮이는 섬/ 흔들리는 듯 흔들리지 않고 늘 떠나지만 다시 돌아와 앉는 섬이 있다./ 섬은 바다를 위해 있고 바다는 섬을 위해 있어, 섬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다의 시인’ 김형술은 이 시(詩)를 가덕도에 바쳤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평화와 건강을 수확하다가, 외침이 있을때면 국토의 남동쪽 끝을 온 몸으로 막았던 곳이다. 가장 먼저 멍이 들지만 꼿꼿이 버틴 장한 섬이다.

‘김해 보개산이 바다에 침몰됐다가 다시 솟아나 부활한 곳’이라는 전설 처럼 아플지언정 사라지지 않는 가덕도에 싱그러운 가을이 찾아왔다. ‘가덕도의 지붕’ 연대봉(459m)에서 동편 해안 새바지 갈맷길5코스를 내려다 보니 무더위를 떠나보낸 여행자들이 싱그러운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들이 있어 가을 가덕도가 생기를 찾는다.

가덕도 북동쪽 낙동강 하류의 자전거 전용도로 둑방길엔 하이킹족의 웃음이 넘쳐난다. 가덕도에서 연민과 추억을 느끼고, 낙동강변 을숙도, 삼락ㆍ대저 생태공원에서 가을의 시원함을 만끽했다면, 낙동강 에코라인 종점 근처인 아미산 전망대 꼭대기에서는 마음을 뻥 뚫어 마지막 앙금 마저 날려보낸다.

번쩍이는 해운대, 시끌벅적 국제시장ㆍ원도심 못지 않게, 오감만족 매력을 품은 서(西)부산의 10월은 가을동화의 아름다움, 자유시(詩)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고대 사원 같은 요새=녹산산단에서 부산신항을 오른쪽에 두고 남쪽으로 가덕도에 진입해 오른쪽 방향 장항에 가면 신석기유적지를 만날수 있다. B.C. 6000년으로 추정되는 토기와 화산지역의 산물, 흑요석제 등 700여점의 문화재가 나왔다. 다시 서쪽해안로를 따라 20분쯤 남쪽으로 가면 부산지역의 유일한 우두머리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을 만난다. 역사가 깊은 가덕도이다.

통일신라~고려 시대 국제무역 주요 귀항지였다가 조선시대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많이 이용된다. 정유재란 당시 명량대첩이 있기 석달전 가덕해전 대패(조선 수군 거제 칠천도 후퇴)가 있었고 우리 수군이 한동안 전열 재정비 시간을 가져야 했던 점은 가덕도를 잃었을때 충격이 컸음을 말해준다.

가덕도 남쪽 허리 잘록한 부분은 ‘대항’이다. 신공항이 들어설뻔 했던 대항 동편 새바지에는 방파제 위에서 여행객들의 낚시질이 한창이다. 이곳엔 일본군의 흔적이 있다. 절벽이 가로막혀 쉽게 이동하지 못하는 두개의 해변을 북한의 남침용 땅굴 크기로 뚫었다. 군사용이었지만 지금은 여행객 놀이터이다.

서쪽 외양포는 만주에서 일본에 졌던 러시아가 해전에서도 패퇴한 곳이다. 가덕도를 잘 이용하는 자가 늘 웃었다. 1904년 일본군 사령부가 최초 주둔한 이곳에는 고대사원같은 시설물 단지가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산 기슭에 1400㎡ 규모의 직사각형 터를 파고 석재 건물을 조성한뒤 그 위를 잔디로 덮었으며, 건물 윤곽은 대나무로 막아 겉으로 보기에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이곳은 바로 일본군 포진지터였다. 막사 2동, 탄약고 3곳, 6~8문의 유탄포가 배치된 곳인데 오랫동안 감춰져 있다가 30여년전 야영MT 왔던 대학 연구동아리 학생들이 발견하면서 베일을 벗었다. 금방이라도 원숭이가 튀어나올 것 같은 동남아 사원 유적지 같은 느낌이다. 포진지 인근 헌병 막사는 지금도 그대로 어느 어민의 자택과 민박집으로 쓰이는데, 과거 서울 부촌 아파트 발코니 붙어있던 접시형 위성안테나가 이 막사의 낡은 벽에 달려 있어 눈길을 끈다.

▶록봉박물관 추억놀이=군 당국의 사전 허가를 얻어야 갈 수 있는 최남단 동두말의 가덕도등대는 이 섬의 최고 비경이다. 근대 서구 건축양식이 반영된 이 등대는 군사시설인 동두말 절벽 끝에 설치돼 있는데, 포항 호미곶등대와 함께 국내 등탑(41m가량) 높이 ‘2톱’이다.

성북동의 천가초등학교에는 개항을 반대하는 흥선대원군의 척화비가 있어 일제 흔적들과 대조를 보인다. 가덕도 자연은 손때 묻지 않아 좋은데, 문화재는 손길 주지 섭섭하다. 조선 중종때 세워진 외침방어용 가덕진성, 인덕높은 절제사 3명에 대해 주민들이 감사의 뜻으로 세운 영세불망비 3개, 일본군 포진지 등은 사실상 방치 상태였다.

두문해변 인근 폐교지를 리모델링한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은 3060 세대에게 추억을 일깨운다. 1960~1990년대 풍금, 라디오, 등사기, 환등기, 농기구, 다듬이, 구슬, 곤봉, 가마솥 등 추억의 소품 2000여점이 6개 전시실에 배치됐는데, 모두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연등꾸미기, 도자기만들기 등 체험도 할 수 있다. 염춘자(73) 원장은 “남녀노소 누구든 찾아 정을 느끼고 서로의 세대 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공간”이라면서 “공익적 공간인 만큼 당국이 임대 조건을 완화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북쪽으로 가덕도를 나오기 직전 동쪽에 있는 눌차도 정거 생태빌리지는 파도가 코앞에서 넘실대는 해변 벽화마을이다. 가덕(加德)대구와 숭어는 진상품 등에 오를 정도로 유명하고 가덕양파는 국내 최상급으로 분류된다. ‘가덕도 대항 숭어들이’(육소장망) 공동어로는 최근 무형문화재 등재 움직임이 일고 있는 200년 전통 조업방식이다. 봄철 숭어 눈이 희미해진다는 점을 활용, 산중턱에서 숭어때 무리의 이동을 관찰하던 어로장이 “후려랏!” 소리 치면 무동력 어선 대여섯척이 일제히 그물로 숭어떼를 둘러싼 뒤 건져 올리는 것이다. 가덕도 비경에 취하고 인심과 스토리에 포근해진 정서는 낙동강 하구에서 유쾌, 상쾌로 변한다.


▶낙동강 하구의 가을과 업그레이드 부산= 바야흐로 낙동강 하구 에코라인에 가을 하이킹족이 몰려들고 있다. 나무터널 둑방 자전거길에서 시원스럽게 페달을 밟는 모습이 경쾌하다. 낙동강에코버스를 타고 편리하게 화명, 삼락, 을숙도 생태공원, 다대포해수욕장을 둘러보는 표정들이 싱그럽다. 에코버스 끝부분 아미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모래섬과 가덕도 및 부속섬, 을숙도 파노라마는 쌓인 앙금을 풀어낼 정도로 장쾌하다. ‘을숙도 철새공원’은 철새 및 습지 보호를 위해 교육-이용 지구의 피크닉광장만 갈 수 있지만, 사전예약하면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제한구역에 잠시 들어가 볼 수 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부산의 여행인프라는 날로 섬세해지고 고도화된다. 어르신이 운전하는 3인승 전동 세발자전거로 산복도로 일대를 구경하면서 역사 해설을 듣는 ‘이바구 자전거’가 새로이 마련됐고 국내 최대 어류 공판장인 부산공동어시장 일대가 할배, 할매 가이드의 스토리텔링 여행코스로 새로 만들어졌다. ‘초량 168계단’에 8인승 모노레일은 6월부터 운행되고 있다.

부산은 미래 ‘바다위의 신도시’까지 꿈꾼다. 국회 융합혁신경제포럼과 부산시는 지난 8월 26일 부산시청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해양 융합 스마트시티’ 조성방안을 공유했다. ‘다 큰 어른’ 부산이 다시 성장하는 모습은 국민의 가슴을 뛰게 한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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