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의 비애] 높디높은 ‘고기회식의 벽’…여전히 배 곯는 ‘食 소수자’

건강·신념으로 채식선택 증가

5년간 관련시장 2배 급성장

국내 채식인구는 아직 2%뿐

직장·사회 인식은 제자리걸음

#. 직장인 오현주(28ㆍ여) 씨는 최근 직장에서 한 주에 한번 꼴로 실시하는 회식 때문에 고역이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두드러기 증상이 너무 심해 의사로부터 권유받은 채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회식 음식이 삼겹살이나 감자탕과 같은 육류다보니 발생하는 고충인 것. 주변 회사 동료들은 이런 오 씨의 사정을 이해해주려 노력하지만, 자신을 까다로운 사람으로 바라보는 팀장ㆍ차장 등 높은 연차 선배들의 따가운 시선을 항상 느낀다는 것이 오 씨의 설명이다. 오 씨는 “채식을 지키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같은 음식을 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육류를 넣고 조리하는 경우가 많아 사전에 깜빡 말을 하지 않을 경우 나온 음식을 못먹은 경험도 많다”며 “사회 생활을 못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문제가 발생해도 꾹 참고 밥만 먹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건강상의 이유를 비롯해 개인의 신념으로 채식주의를 선택한 주변 사람을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들은 ‘소수자’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세계 채식인의 날’을 맞아 4일 한국채식연합이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국내의 채식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2%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KTX 1개 차량에 손님이 가득 찰 경우 탑승객 중 1명은 채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인원으로 환산할 경우 약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한국채식연합은 보고 있다.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시장의 규모 역시 함께 성장하고 있다. 불과 몇해 전만해도 쉽게 찾기 힘들었던 국내 채식 레스토랑 및 채식 베이커리도 최근 300여곳으로 5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다만 인구 수의 증가 및 시장의 확대에 비해 인식의 변화는 이들 속도를 따라가는데 역부족인 상황이다. 


특히나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채식주의나들이 쉽게 겪게 되는 가장 높은 현실의 벽은 바로 회식자리다. 삼겹살-소주-치맥이 회식의 대표 문화로 일컬어지는 상황에서 고기를 거부하는 모습 자체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남들과 ‘같지 않은’ 상황에 대해 불편함을 대놓고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동물권이 침해 받는 비위생적인 사육환경이 문제라는 신념으로 채식을 하고 있다는 국내 대기업 직원 김모(31) 씨는 “회식 첫날 채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날부터 회사 생활에 암운이 드리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처음엔 이해하는 척하던 상사들도 취가가 오르자 ‘남자가 고기도 안먹으면 어떻게 어울리나’, ‘그러다 사회생활 꼬이는 수가 있다’, ‘까다롭게 자기할 것 다 챙기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없다’는 등의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채식을 실천하는데는 가족들의 반대도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도 가족이 주인공의 채식 습관을 열렬히 반대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가족들의 경우 영양학적인 문제를 들어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워킹맘인 박모(34) 씨는 결혼 후 페스코 채식 문제 때문에 시부모로부터 눈총을 받아왔다. 박 씨는 “임신 후 채식을 유지하려 했지만 시부모가 태아를 생각한다면 그만두라고 반대하는 바람에 ‘고부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경우 생활 양식에 대한 개개인의 선택이나 자유에 대한 관용보다 타인과 비슷해야 한다는 ‘동조화’에 대한 압력이 어느 사회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며 “높은 연령대 뿐만 아니라 20~30대 젊은층에서도 여전히 동조화의 압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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