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진·태풍에도 그대로인 안전불감증 고칠 약은 없는가

판박이다. 지난번엔 지진이었고 이번엔 태풍이다. 흔들리는 대지와 물폭탄으로 재난의 종류만 바뀌었을 뿐 늑장경보, 대응 시스템 미비 등 거론되는 문제점은 똑같다. 이 모든 것은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됐다. 그러니 자연재난에 인재가 겹쳐 피해를 키웠다는 결과도 언제나 같다. 18호 태풍 ‘차바’는 6일 오전까지 사망실종 10여명에 500여채의 주택침수, 8000㏊의 농경지 소실 등의 피해를 안겼다. 아직도 진행중이어서 그 규모는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태풍 ‘차바’는 소형 태풍이지만 강도가 센데다 일본 본토로 상륙할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한반도 남부로 방향을 틀었다. 태풍의 경로와 위력을 예측하지 못한 기상청의 미흡한 예보가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늑장 대응도 여전했다. 울산 태화강 인근 주민들은 ‘늑장 경보’ 탓에 차를 미리 대피시키지 못해 수백대가 침수됐다. 안전불감증의 댓가는 이렇게 혹독하다. 부산의 대표적인 부촌아파트 밀집지역 해운대 마린시티는 조망권을 주장하는 일부주민들의 반발로 적정 높이(3.4m)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m로 방수벽을 만드는 바람에 이번에 물바다로 변했다. 보강 공사를 끝마친지 3년도 안 된 부산 감천항 방파제는 새로 쌓은 구조물의 80%가 무너져버렸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가슴을 서늘케하는 지적도 계속 나온다. 지난달 12일 경주 지진 당시 한국가스공사가 고압가스 공급배관망과 정압관리소의 내진설계 기준을 초과하는 지진계측값들을 보고받고도 가스공급을 중단하지 않은 사실이 이번 국감에서 드러났다. 자칫 폭발로 이어졌다면 대형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울산혁신도시는 적정한 배수시설이 확충되지 않아 기습폭우 등 갑작스런 기상이변에 무방비 상태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지만 해결책은 감감 무소식이다. 안일한 대책과 방심이 몰고 오는 ‘인재(人災)’의 가능성은 여전히현재 진행중인 셈이다.

기억은 시간에 반비례한다. 오래되면 잊혀진다. ‘재난에서 얻은 교훈도 되뇌어야 잊혀지지 않는다’는 게 독일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이론’이다. 불과 2주전의 경험조차 잊었다는 점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재난안전 관계자들에겐 망각곡선이 아니라 망각절벽인 셈이다.

안전에 사용하는 돈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각종 안전사고와 관련된 비용만 해도 매년 약 33조원에 육박한다. 사고 발생 전에 사고 수습에 들어갈 비용의 일부만 투자해도 그 몇 배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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