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號 출범 때맞춰 ‘지배구조 개편’에숟가락 얹기

사외이사 추가요구 영향력 확대
삼성엔 “실보다 득”시장 분석속
30조 배당요구는 너무 지나쳐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 분할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점상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에 대비한 것이고, 실리적으로는 삼성전자 주가 띄우기와 현금 배당이 목적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외이사 추가 요구는 삼성전자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키 위한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이재용 등기이사 선임 앞둔 포석=오는 27일 삼성전자는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이재용 부회장을 등기이사로 공식 선임한다.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가 되면 이사회 일원으로 등록되며 매 이사회에 참석하게 된다. 이 부회장은 그간 공식 비공식적으로 삼성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에 큰 영향력을 미쳐왔지만, 등기이사가 될 경우 법적 책임까지 지게돼 재계에선 “이 부회장이 드디어 ‘책임 경영’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받아왔다.

엘리엇의 이번 제안은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꼭 3주 앞두고 삼성전자 측에 전달됐다.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고 나눠진 지주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하라는 요구였다. 이럴 경우 삼성물산은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가 된다.

삼성그룹의 주요 지배구조 개편이 한창 진행중이고, 그룹의 사실상 주요 의사결정권한을 행사해온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에 맞춰 엘리엇 역시 자사에 유리한 입지를 마련키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엘리엇 역시 공개 서한 마지막에 “우리는 삼성전자가 새로운 리더십을 맞이하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매우 큰 기회가 될 수 있는 제안을 했다”며 “실제 주주가치향상와 지배구조 투명성 개선을 바라는 진심이 삼성에 닿길 바란”고 밝혔다.

엘리엇은 이번 제안으로 막대한 수준의 현금배당을 챙길 가능성이 있다. 엘리엇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0.62%다. 엘리엇은 주당 24만5000원 가량의 배당을 삼성전자측에 요구했다. 엘리엇이 보유한 삼성전자 보통주(76만218주) 주식수를 고려하면 대략 1862억원 가량을 현금으로 배당 받을 수 있게 된다.

▶삼성전자 ‘득될까 실될까’=엘리엇은 삼성전자를 두개 회사로 나눠 각 회사 이사회에 3명의 사외이사를 추가할 것을 요구했다. 또 나눠진 회사 가운데 지주회사를 나스닥에 상장시킬 것도 요구했다. 나스닥에 삼성전자 지주사가 상장될 경우 엘리엇 등 미국 펀드들이 삼성전자에 미치는 영향력은 확대될 수 있다.

삼성측은 엘리엇의 이번 요구가 그간 추진해온 지배구조 개편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삼성은 삼성물산 및 삼성전자의 분할, 그리고 이후 삼성물산과의 합병 등을 밑그림으로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해오고 있다.

문제는 삼성측의 이같은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 확정되기 위해선 특별주주총회를 거쳐야 하는데 이 작업이 만만치가 않다. 개별 회사 주주들의 이해득실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엇이 삼성측이 검토해온 방안을 공식 요구해오면서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가 더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장은 이번 엘리엇의 요구가 삼성그룹에 실보다 득을 더 안겨줄 것으로 보는 입장이 우세하다.

반면 사내 유보금 77조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0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현금배당으로 달라는 요구는 삼성그룹 내 투자여력 등을 고려할 때 삼성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이 스스로 내세우기 힘들었던 삼성전자의 인적분할과 지주전환 명분을 세워준 격”이라고 판단했다. 엘리엇의 특별배당 요구 역시 다소 과한 측면이 있지만, 삼성 측이 애초 고려했을 선택지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삼성전자 인적분할을 위해 대규모 주주친화정책을 예상했기에 걸림돌이 되기보다 결국 삼성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면 되는 규모와 정책, 스케줄의 문제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홍석희 기자/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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