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일간의 세계여행] 127. 모로코의 쉐프샤우엔…‘파란 나라’서 길을 잃다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모로코의 쉐프샤우엔은 리프 산맥에 있는 두 개의 봉우리 사이에 있다. 샤우엔은 “염소의 뿔(chouoa)”이라는 베르베르어이고 셰프(Chef) 샤우엔(Chaouen)은 “뿔을 보아라”는 의미다.

원래 이슬람의 색은 녹색인데, 모로코와 부합하지 않는 파란색의 도시가 건설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쉐프샤우엔은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정착한 데다가 특히 1930년대에 건너온 유대인 이주자들 덕분에 파란색으로 칠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블루시티로 유명한 쉐프샤우엔에 도착했다. 


메디나가 산에 형성되어 있는 산동네라 골목길을 통해 위로 올라간다. 색색의 핸드메이드 담요를 널어놓은 벽 너머 파란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래쪽 골목들은 작은 카페, 잡화를 파는 구멍가게, 가죽, 옷, 향수를 파는 상점들이 파란 벽과 어울리게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다. 무엇을 팔고 있든 사람이 살고 있든 이 파랑의 향연은 머릿속을 상쾌하게 한다. 골목마다 모로코인들이 즐겨 마시는 민트차의 향기가 풍긴다.

이런 산골, 그것도 무슬림의 나라에 이렇게 예쁘고 파란 마을이 있다는 것이 동화인 것만 같다. 며칠 전 페스 메디나에서 초긴장하며 헤매던 기억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여기 쉐프샤우엔의 작고 예쁜 골목들은 편안한 휴식을 준다. 어느 골목에서 방향을 바꿔도 길을 잃을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오히려 생생한 즐거움이 된다.


직접 짠 의류나 숄 등의 수공예품의 아름다움 색감도 눈길을 끈다. 어디든 맨 먼저 여행자의 시선을 끄는 것은 시각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파란색의 벽에 아름다운 색감이 더해진 핸드메이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으니 여행자들의 호주머니를 열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디에 들어가도 수공예품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골목을 따라 오르다 보니 어느새 가게들은 없어지고 현지인들이 사는 진짜 메디나에 와있다. 계단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냥 길을 타고 오르기도 하면서 만나는 어떤 골목은 두 사람이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곳도 있다. 좁은 골목, 좁은 문, 작은 창문뿐, 큰 게 하나도 없다. 사람이 만들어낸 하늘색과 자연 그대로의 하늘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하늘도 파랗고 벽도 파랗다. 파랑, 하늘색, 흰색들을 단계적으로 칠한 벽의 파란 대문 안에 만화 속의 파란 피부를 한 스머프들이 아니라 모로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런 곳에서 사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동화 같은 골목을 헤매는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싱그러우면서도 차분해져서 절로 미소가 입가에 머문다.


관광객들이 많지 않은 거주지의 벽은 가게들이 있는 아래쪽보다는 말끔하지 않고, 아름다운 수공예품 대신 빨래가 척척 널어져 있지만, 나는 이 풍경에 더 마음이 간다. 평범한 사람들이 하루를 살아가는 곳에서는 늘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청량감이 감도는 파랑의 세상은 좁은 골목의 높은 벽이 따가운 햇살을 차단해주니 진짜 시원하다. 햇빛과 적을 막는 메디나의 구조를 이해할 것 같다. 햇빛이 쏟아지는 계절이 되면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예쁜 타일과 파란 벽으로 둘러싸인 공용수도를 틀어 손을 닦는다. 그냥 이 모든 것들이 재미있고 신기할 따름이다.

뾰족한 모자가 달린 젤라바(Jellaba)라는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파란 거리를 누비는 모습은 마치 마법사가 동화 속 마을을 활보하는 것 같다. 이곳은 시골마을이라 아직도 사람들이 카메라에 민감하다고 해서 사람들 사진은 조심하며 찍는다. 아까도 어떤 할아버지한테 혼나는(?) 여행자를 봤다. 전에 에싸위라에서도 경험했지만,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믿는 할아버지들이 화내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른 것도 아닌 “영혼”을 가져가지 말라는 것이니 말이다. 호기심에 카메라를 들지만 차마 찍지 못하고 돌아서서 애꿎은 뒷모습만 찍는다. 


반면 아이들은 사진에 너그럽다. 마을에 가까이 가니 골목에 아이들이 나와 놀다가 이방인의 출현에 수줍어하기도 하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어딜 가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은 아이들뿐이다. 말 걸어주면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돌리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따라 계속 오르니 메니다의 바깥으로 통하는 성문이 보인다. 저 아래 광장으로부터 많이도 올라왔다. 아직까지는 메디나 안이라 건물이 파란색이지만 이제 붉은 벽돌로 쌓은 성문을 나가면 다른 세상일 것이다.


메디나의 정상으로 올라와 성문을 나서니 파란 건물은 사라지고 산이 시야를 트여준다. 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메디나 성문 밖에는 차들이 오르내린다. 쉐프샤우엔에서 생산되는 염소치즈가 유명하다더니 역시 산비탈의 풀밭에서는 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구시가인 메디나 말고 신시가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을 실어 나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파란빛의 메디나에 감탄하며 파란 하늘만 보고 올라왔는데 메디나를 벗어나니 녹색의 리프 산맥이 쉐프샤우엔을 감싸고 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내려가는 길은 오를 때보다 편하기는 하다. 포대자루가 나란히 늘어서 있고 알록달록한 무엇이 매달려 있는 게 마치 마법의 재료라도 파는 것 같은 예쁜 가게가 보여 다가간다. 색색의 포대에는 다양한 색깔의 색가루가 담겨있다. 나무 빗자루 옆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태리타월’이라고 부르는 일명 때수건이다. 모로코에는 이슬람 문화인 함맘(Hammam)이 있다. 함맘은 아랍어로 목욕탕을 말한다. 공중목욕탕 문화가 있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신기할 것이 없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특이하게 보이는 대중목욕탕이다. 유독 쉐프샤우엔에서는 이태리타월을 많이 판다.

인적이 없는 골목에서 여행자를 주시하는 눈동자들은 고양이들이다. 세계 어디에 가도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은 개였는데 모로코에서는 거리에 고양이들만 보인다.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빤히 쳐다보는 파란 마을의 점박이 고양이들도 쉐프샤우엔의 한 풍경이 된다. 메디나의 좁은 골목길에서 코카콜라 박스는 당연히도 당나귀가 운반한다. 그런 운명을 지고 태어나서 그렇게 소모되는 게 당나귀의 삶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작은 체구와 선한 눈망울이 불쌍해서 자꾸 되돌아보게 된다.

어젯밤 처음 나왔던 우타 엘 하맘 광장(Placa Uta El Hamam)으로 내려온다. 그림자는 길어진 것을 보니 한나절을 메디나 안에서 보냈다. 광장에는 커다란 소나무를 중심으로 ‘성채’라는 의미의 카스바(Kasbah)와 이슬람 사원이 있고 그 앞에는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다. 이슬람 사원의 팔각형 미나렛이 아름답다. 사원이야 본래 신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지만 카스바에도 들어가지는 않는다. 근처에 하맘(Hamam : 공중목욕탕)이 있으니 그렇게 이태리타월을 많이 팔았나 보다. 광장 카페에서 민트 티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저녁은 현지인들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군것질로 때우기로 한다. 별별 것을 다 파는 시장인데 나만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여전히 이태리타월이 눈에 띄어서 웃게 된다. 메디나 바깥인데도 여전히 좁은 골목에 가게가 문을 열고 노점이 서고 저녁장을 보는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좋아하는 시장의 활기를 느끼며 군것질 거리를 사서 먹으면서 한눈을 팔고 있는데 어디선가 “안녕하세요!”라는 선명한 한국말이 들린다. 뒤돌아보니 한국인이 아닌 모로코 여자들 셋이 나를 부른 것이다. 한국인일지 확신은 없었지만 그냥 한 번 말을 걸어 본거라고 한다. 낮에 만난 인셉과 달리 영어도 유창한 그녀들은 대학생들이다. 


한류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고 케이팝을 즐겨 듣는다는 그녀들은 한국어 발음도 정확하다. 시장 모퉁이에서 지인을 만난 것처럼 수다를 떤다. 오늘은 시간이 없다는 그녀들과 내일 우타엘하맘 광장의 큰 나무 아래서 오후 6시에 만나기로 한다. 한 사람은 카카오톡 아이디가 있어서 그것으로 연락을 하기로 하고 헤어진다.

길을 알려주거나 도움을 주고는 10디람쯤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미로 같은 메디나에서 헤매던 나를 당황하게도 했던 페스의 메디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순박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 쉐프샤우엔이 생각할수록 좋아진다.


오늘의 대미는 메디나 옆의 산에서 장식한다. 높은 곳이 아니라 천천히 20분 정도만 오르면 되는 언덕에 서서 일몰을 바라본다. 모로코 북부의 파란 산골 마을에 하나 둘 불이 켜진다. 이곳이 선셋 포인트라 여행자나 모로코인들도 몇 명 있긴 하지만 불빛이 없는 산길이 캄캄해질 때까지 앉아있을 수는 없어서 어느 서양인 커플이 내려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 내려간다.

산에서 내려오니 메디나도 광장도 모두 어둠의 베일 속으로 들어가고 상점에는 하나둘 불이 켜진다. 젤라바를 입은 사람들이 그 뾰족 모자까지 덮어쓰고 사원을 나서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신에게 엎드려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들과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먹고 마시고 호객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스친다.

정리=강문규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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