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후 공론화될까…개헌론 여야 셈법은

- 원내외 개헌모임ㆍ제3지대론 타고 곳곳 움직임 활성화

[헤럴드경제]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전체의 판도를 흔들 변수로 개헌론이 꿈틀거리고 있는 가운데 실현 가능성에 촉각이 곤두세워지고 있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개헌논의가 자연스럽게 본궤도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이를 놓고 여야의 셈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여권 내 공론화 열쇠는 대통령…친박 주류 국면타개책 ‘만지작’=여권내 개헌 공론화의 결정적인 변수는 단연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동안 새누리당내에도 개헌 찬성론자들이 적지 않지만 개헌론이 수면으로 부상할 경우 ‘개헌 블랙홀’로 인해 국정 어젠다 추진에 힘이 분산될 수 있는데다, 자칫 레임덕을 재촉하는 요인이 될 수 있는 탓에 박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개헌론이 탄력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2014년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상하이(上海) 개헌론을 내놨을 때 박 대통령이 거부감을 드러내자 하루 만에 사과하며 발언을 거둬들인 것은 이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임기 초중반과 달리 임기 후반으로 향하고 차기 대선을 향한 관심이 점차 커지면서 여권내 개헌 논의 기류는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비주류 대권 잠룡들은 박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거침없이 개헌론을 주창하고 있다.

“87년 체제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면에는 차기 대권 레이스 판도와 각 후보들의 권력이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차기 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여권 후보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제외하고는 비주류 후보군들의 지지율은 미미한 수준에 그친 상황이다. 현재의 추세라면 합종연횡이 이뤄지지 않거나 ‘게임의 판’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는 어느 후보도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게임으로 평가받는 현재의 5년 대통령 단임제 선거에서 혼자의 힘으로 승자가 되기는 힘든 구도이다.

때문에 개헌을 통해서 일정한 지분을 차지하는 권력 운용 체제의 변경을 도모하거나 대선 경선과정에서 개헌을 고리로 작게는 합종연횡, 크게는 정계개편까지 내다보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독자적인 권력 창출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여야의 친박(친박근혜)ㆍ친노(친노무현) 세력이 아닌 중도세력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겨냥해 ‘충청 영남’이나 ‘영남 호남’ 같은 지역구도별 연합 또는 각 정당의 중도세력 간 연정 등 다양한 연대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게 비주류 개헌론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여권에서 대표적 개헌론자로 꼽히는 인물은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재오 전 의원,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으로 당내에서는 모두 비주류에 속한다.

김 전 대표는 ‘제왕적 권력’을 지닌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고 연정을 할 수 있도록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일찌감치 강조해온 원내 대표적 개헌론자다.

유 의원도 최근 연이은 대학교 강연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소신을 거듭 밝혔고, 오 전 시장도 4년 중임제로 가되 임기 중간에 총선을 치를 수 있도록 개헌하자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남 지사도 4년 중임제와 국회 의석수에 따른 장관직 배분이라는 ‘한국형 모델’로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19대 국회에서 초당적 개헌 논의를 주도했던 이재오 전 의원은 아예 “개헌과 행정구역 개편을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기조 아래 ‘늘푸른한국당’(가칭) 창당에 착수했고, 정 전 의장도 ‘새한국의 비전’ 싱크탱크를 만들어 개헌 작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상황이다.

여권 비주류 대권주자 또는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이들이 개헌을 화두로 삼는데는 과거보다 개헌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커졌다는 데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24일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갤럽이 개헌 필요성에 대해 대국민 설문조사(전국 성인남녀 1002명 대상ㆍ신뢰 수준 95%에 표본오차 ±3.1%p)를 실시한 결과 필요하다는 쪽(46%)이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응답률(34%)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내 개헌론을 점화시켜 추진력을 배가시킬 변수는 당내 주류나 친박계의 움직임이다.

청와대는 개헌론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여의도 정가에서는 박 대통령이 연말 연초쯤이면 개헌에 대해서 전향적인 입장 표명을 할 것이라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개헌 블랙홀론’이 아니라 ‘개헌 주도론’으로 임기말 국면을 타개하고 차기 정권 재창출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이다.

친박계 물밑에서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얘기하는 목소리가 있다. 현 정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새누리당 정종섭 의원은 개헌론을 줄기차게 제기할 태세이다.

당 지도부인 정진석 원내대표도 국정감사가 끝나면 야권이 요구하는 국회 개헌 특위 구성에 대해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했다.

‘개헌 논의는 국력을 분산시킨다’며 청와대가 개헌 이슈에 대해 난색을 보이고 있지만, 개헌론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 차기 대권 구도의 불가측성, 개헌 필요성에 대한 명분 등이 맞물리고 정국 불안정이 계속될 경우 여권내 개헌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야권 잠룡들 ‘文대항 카드’로 활용 가능성…‘3지대론’ ‘비패권지대론’ 주목=야권에서는 개헌이 유력한 대선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 고착화를 뒤집을 카드로 지목되면서 논쟁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 내에서는 이 같은 개헌 논의가 내년 대선과 맞물려 대권 경선지형을 뒤흔들 수 있다는 측면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문재인 대세론’이 자리하고 있다.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 독주 중인 문 전 대표에 대항할 수단으로서의 개헌이란 점에서 파괴력이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의 경선 구도로는 대세론을 엎을 수단이 마땅치 않기에 개헌을 매개로 판을 흔들어야 문 전 대표에 대적할 지형이 구축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런 셈법은 개헌 논의가 분권형 개헌에 뜻을 같이하는 비문ㆍ비박 진영 주자들이 중간지대로 헤쳐 모여 경선을 치르자는 ‘제3지대론’과 맞닿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문 전 대표에겐 껄끄러운 구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제3지대론의 선봉에는 공교롭게도 문 전 대표가 영입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가 서 있다. 김 전 대표는 임기 단축을 각오하고 개헌을 주도할 대선주자가 필요하다며 ‘비패권지대’라는 이름으로 3지대론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등 더민주 잠룡들은 공통적으로 분권형 개헌을 주창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방식의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는 입장이다. 다만 정치적 불리함을 뒤집으려는 수단으로서의 개헌 접근법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개헌 논의 흐름에 따라 어떤 행보를 보일지 알 수 없다. 박 시장은 당파 입장에 따라 개헌이 논의돼선 안 된다는 점을 누누이 밝혀왔고, 그런 점에서 박 시장 측 인사도 9일 “제3지대론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안 지사 역시 “개헌 논의가 국면 운영용 전략이 돼선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분권정치 실현을 위해 임기와 권한을 포기할 각오를 강조했던 김부겸 의원 측의 한 인사도 이날 “개헌으로 판을 흔들려는 구도에는 반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표면화된 입장과는 무관하게 개헌 논의의 불씨는 지펴졌다. 현직 의원들로 구성된 ‘20대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이달 말을 목표로 국회 내 개헌특위 구성을 추진 중이고, 여야 원외 유력인사 150여명으로 구성된 ‘나라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역시 지난달 창립대회를 하고 본격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김종인 전 대표와 정의화 전 국회의장, 윤여준 전 장관도 최근 회동, 개헌을 매개로 한 ‘비패권지대론’ 띄우기에 나서는 등 개헌 논의가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이처럼 개헌 논의가 불타오를 경우 대세론 흔들기 소재로 활용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곧 정계에 복귀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3지대행(行) 선언도 배제할 수 없다. 문 전 대표가 버티는 더민주에서의 공간 모색이 여의치 않을 수 있어서다.

사실상 3자구도를 염두에 둔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지형 개편을 동반한 개헌엔 반대한다. 국민의당 중심의 3지대론을 구상하는 마당에 개헌이 3지대의 고리가 되면 자칫 주도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안 전 대표 측은 “현재 진행되는 개헌 논의는 정치 공학적 권력구조 개편에 그치는 듯하다”며 “그런 논의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당내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 출신의 전ㆍ현직 의원들을 중심으로 집권을 위해서는 친박ㆍ친문을 제외한 개혁세력이 모여야 하고 특히 개헌을 매개로 하면 참여세력이 많아진다는 이유로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다.

당사자인 문 전 대표 측은 이런 기류를 예의주시하며 말을 아끼고 있다. 문 전 대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문 전 대표 측 인사는 “청와대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개헌이 가능하겠느냐”며 “대선후보들이 공약하고 차기 정부 초기에 신속히 개헌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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