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경쟁업체 이직하는 명예퇴직자에 특별퇴직금 줄 의무없다”

-명예퇴직 제도는 퇴직자 신청뿐 아니라, 사용자의 승인이 있어야 성립

-사측이, 경쟁회사로 이직한 명퇴자로 피해 우려된다면 특별퇴직금 줄 필요없어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경쟁업체로 이직하면서 명예퇴직을 신청해 특별퇴직금을 신청했다면 기업은 이를 줄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신)는 이모(45) 씨가 한국외환은행(이하 외환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대법원 정문

1990년 1월부터 외환은행에서 근무하던 이 씨는 2010년 8월부터 이 회사 프라이빗뱅커(PB)로 일했다. PB로 경력을 쌓던 중 근무하던 지점 인근에 경쟁사인 S사가 전문 PB점을 여는 것을 알고 면접을 본후 2010년 10월 이직하게 된다. 그런데 외환은행은 당시 인사적체를 해소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준정년 특별퇴직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정년이 되지 않았지만, 장기근속자들이 회사를 조기 퇴직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이나 회사의 취업규칙 등에 의해 정해지는 퇴직금과 별도로 상당한 금액이 추가 지급되는 제도다.

이 씨는 이를 알고 준정년 특별퇴직제 적용 대상으로 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회사측은 이 씨가 경쟁사인 S사로 옮기는 것을 파악한 후 ‘동일지역 경쟁업체 이직 예정자에 대해선 준정년 특별퇴직’ 승인 예외적용하기로 했다. 

당장 자사의 영업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에서 전문직종인 영업점 PB가 동일 고객군을 상대로 업무하면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고, 이를 알고 특별퇴직금을 지급하면 도덕적 해이와 배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자신도 준정년 특별퇴직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외환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원고측 손을 들어줬다. 회사측이 소속 근로자의 준정년 특별퇴직신청에 대해 심사하여 승낙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있다고 해도 승낙거부사유의 정당성, 다른 대상자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1심 재판부는 “원고는 기본적으로 준정년 특별퇴직 대상자 요건에 모두 해당하며, 영업직원으로 근무하다가 동종업종으로 이직한 다른 직원에게 준정년 특별퇴직금을 지급하기도 했다”며 “원고의 준정년 특별퇴직신청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준정년 특별퇴직 제도는 근로자의 신청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에 대한 사용자의 승낙이 있는 경우에 비로소 성립되는 규정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제도 도입 취지를 고려한다면 은행 측이 이를 승인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2심은 “자사에서 한참 좋은 실적을 올리면서 왕성하게 일하는 직원이 경쟁업체에서 일하기 위해 자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직하는 경우에까지 준정년 특별퇴직 대상자로 정하도록 기대하긴 어렵다”며 “준정년 특별퇴직 제도 도입 취지를 고려할 경우 기업이 특별퇴직금을 지급할 의무는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2심의 이런 판결을 “관련법리, 취업규칙 해석,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최종 확정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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