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톡톡]‘공항가는 길’이 불륜드라마가 되지 않은 요인 세가지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 기자]KBS 수목극 ‘공항 가는 길’은 매회 잔잔한 멜로영화 한 편씩을 보는 듯하다. 이 드라마는 느낌으로 보면 점점 빠져드는 감성멜로다. 대사가 문학적이면서 무척 세련돼 있다. 영상미도 영화적이어서 고급스러움에 한몫한다. 그러니 시청자들이 묘하게 설득된다.

‘공항 가는 길‘은 김하늘이 ”우리 좀 간당간당한 건 알죠“라고 했던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좀 위태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불륜 드라마라고 하지는 않는다.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일지언정 불륜드라마는 아니라는 말이다.

‘공항 가는 길‘이 유부남 이상윤(서도우)과 유부녀 김하늘(최수아)간의 관계가 진전되어도 ‘가정법원 가는 길’이 되지 않는 이유와 상황들이 충분히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 연결돼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몇가지로 나눠서 보자.

이 드라마는 김철규 PD가 미리 밝혔듯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드라마다. 사람들의 관계는 애매하고 모호한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 규정짓기도 뭐한 관계도 있다. 드라마는 이런 걸 두 남녀를 통해 섬세하게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있다.


관계속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지치고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누군가의 위로를 필요로 한다. 부모 자식 배우자에게 위로를 받으면 문제가 없다. 동성이어도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그게 이성간이면 사정이 달라진다. 불륜이냐 아니냐를 따지게 되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고무줄 기준이 적용되기도 한다. 김 PD는 그 평가는 오로지 시청자들의 몫이지만, 남녀가 친구처럼 만나는 걸 이상하게 봤는데 점점 이상하지 않는, 인간적인 삶을 그린다고 했다.

두번째는 이상윤과 김하늘이 본인들의 의도(의지)가 있어 만난 게 아니라 인연에 의해 만났다는 점이다. 서도우의 죽은 딸 애니와 서도우의 모친인 인간문화재 매듭장 고은희 여사를 통해 둘 사이가 연결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 위로가 되고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둘의 관계는 애니를 통해 남녀관계가 아니라 딸을 가진 부모라는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면서 가까워지는 걸 굳이 이성간의 만남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흔한 불륜드라마는 남녀가 눈이 맞아 서로에게 끌림 현상이 일어나는데 반해 ‘공항 가는 길‘은 관계 하나하나의 연결을 보여주고, 여러가지 양상으로 그려내면서 불륜을 다루되 불륜드라마는 아니라는 점이 묘하게 설득된다.

이상윤은 김하늘에게 ”우리가 작정하고 만든 게 아니잖아요. 자연스럽게 생겼고 이젠 그게 필요해졌고..“라고 말했고, 김하늘은 “우리 관계 애매하게 둬요. 그래야 오래 가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바라지 않기, 만지지 않기, 헤어지지 않기’라는 조건의 ‘삼무(無)사이’ 만남을 제안했다. 김하늘은 이전에도 “만나지말고 전화만 하는 건 어때요”라며 ‘내 귀의 캔디’식 관계를 제안했다. 서로 위로받는 관계이지만 부담과 죄책감을 피하기 위한 말이다.

김하늘의 남편인 기장 신성록(박진석)은 아내를 횡적 관계가 아닌 종적 관계인 ‘자네’라고 부르는 위계적 인간이고, 이상윤의 아내인 장희진(김혜원)은 집착과 히스테리가 있지만, 이를 불륜의 근거 내지 당위성으로 활용하지는 않는다.


세번째, 불륜의 화살을 피한 요인은 따뜻한 눈빛과 미소로 여성을 무장해제시키는 이상윤의 역할이 크다. 이 남자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서도우 역을 하는 이상윤은 지적이고 따뜻하며 반듯하다는 이미지가 여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게 한다. 그런 남자는 절대 불륜 같은 지저분한 짓을 저지르지는 않을꺼야 라는 심리적 믿음의 안전판을 이상윤이 여성시청자에게 제공하는 것 같다. 이상윤의 서글서글한 미소와 깊은 눈빛, 다정한 저음의 목소리, 왠지 고급스러워보이는 느낌이 이런 감성멜로를 멋있게 만들어주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물론 김하늘도 감성적이고 깨끗한 멜로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공항 가는 길’은 기장과 승무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낯선 지역을 수시로 다닌다. 승무원인 김하늘이 “어느 낯선 도시에 비행 가서 30분간 사부작거리며 걷는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에 복잡한 생각과 스트레스가 잠시 사라졌다”고 말한다. 뭔가 일상을 멋어나려는 욕구, 일탈하고자 하는 심리를 적절히 충족시키는 여행의 미덕과 이들의 직업중 일어나는 낯선 지역에서의 산책을 연결시킨다. 그런데 어쩌면 불륜이 될 수도 있는 김하늘이 이상윤과 전화로 좋은 시간을 보내다 끊는 순간을 “비행간 낯선 도시에서 30분간 산책끝”이라고 표현한다. 절묘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김하늘은 그만큼 이상윤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는 뜻이다.

김하늘이 이상윤을 만나는 행위는 남녀관계의 문제가 아닌, 여행에서의 산책효과와 일치한다. 김하늘은 일상의 긴장만으로는 살 수 없다. 승무원으로 정신없이 일해야 하고, 글로벌한 아이로 키우려는 아빠의 욕심에 딸 효은을 돌보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는 맥주 한 캔 들고 앉아있는 좁은 배란다이다. 이런 김하늘에게 비행간 낯선 도시에서 사부작거리며 걷는 자유 정도는 줘야하지 않을까?

‘공항 가는 길’에는 한가지 비밀이 있다고 한다. 몇 개의 떡밥을 던져놓은 만큼 이를 회수하면서 비밀은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이다. 김혜원이 죽은 딸 애니와 관련해 가지고 있는 비밀들이 ‘친부가 이미 죽었다‘는 등 하나씩 풀어지고 있고, 신성록과 최여진(송미진)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궁금증을 열어줄 것이다. 이와 함께 이상윤과 김하늘의 앞으로의 관계진전은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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