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저축 권하는 사회

다가오는 10월 25일은 ‘투자의 날’이다. 1964년에 10월의 마지막 주 화요일로 지정되었던 ‘저축의 날’이라는 명칭이 올해부터 바뀌었다. 저금리 시대에 은행 예금만 쳐다보지 말고 금융상품 투자에 관심을 가지라는 취지는 쉽게 이해되는데,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예금이든 투자든 간에 소득 중에서 소비하지 않고 일정 부분을 축적한다는 점에서 모두 ‘저축’에 해당한다.

문제는 별도로 날을 만들어 장려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가계가 저축을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중반에 3%대로 너무 낮다고 걱정했던 가계순저축률은 지난해 7.7%로 상승했다. 이처럼 저축률이 높아진 결과 올해 2분기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70.9%로 역대 최저를 기록하면서 소비 부진을 반영하고 있다. 저축은 개인적 차원에서 미덕이지만, 모두가 저축을 많이 하면 거시경제적으로 소비 부진이 불가피하며 이에 따른 저성장은 가계소득의 둔화로 귀결된다는 ‘저축의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계가 저축을 늘릴 이유는 많다. 예컨대 수년 전부터 본격화된 전세가격 상승은 전세보증금 마련을 위한 세입자의 강제 저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가계부채의 구조 개선을 이유로 시행중인 원리금 분할상환 유도 정책도 저축률 상승과 소비성향 하락에 다소나마 기여한다. 그러나 저축률 상승의 가장 큰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노후 대비이며, 이를 반영하여 가계의 금융자산은 보험과 연금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도 각종 연금상품에 대한 세제혜택 등으로 노후대비를 위한 저축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요컨대 객관적인 경제적 여건이나 정부정책 등의 측면에서 우리는 ‘저축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물론 저축이 늘어나고 그만큼 소비가 둔화되더라도, 늘어난 저축이 금융중개기능을 통해 생산적 투자로 연결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국내외 경제가 저성장기에 접어들어 생산적 투자대상이 마땅치 않은 탓으로 저축이 투자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저축률 상승은 저성장의 또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실물경제의 투자여건을 생각해 보면 연금상품 등의 금융자산 축적에 기반한 노후 대비라는 가계의 재무 모델은 고성장기의 서구 선진국에서는 적합했을 수 있으나, 지금의 우리 경제에도 적합한 것인가는 생각해볼 문제다.

현재 개인연금 등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강화되는 배경에는 가계의 금융자산 축적 수준이 노후 대비에 미흡하다는 판단이 있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포함한 사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20% 정도에 그쳐 OECD 등 국제기구의 권고비율인 40%에 한참 못미친다는 지적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여 가계의 노후대비용 저축이 더욱 늘어난다면, 소비 부진과 저성장 기조도 심화되면서 결과적으로 노후 대비에도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 가계의 자산구성은 실물자산(주택)에 크게 편중되어 있다. 이런 조건에서 금융자산의 비중을 빠르게 높이고자 하는 시도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쉽다. 노후를 위해 청장년기에 축적한 자산의 연금화가 필요하다면, 실물자산 위주로 자산을 축적해온 우리 가계의 노후생활 또한 실물자산의 연금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주택연금 상품도 더욱 활성화되고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

최근 시작된 ‘코리아 세일 페스타’는 단기적인, 어찌 보면 일회성의 소비 촉진정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중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저축 촉진정책도 시행되고 있다. 노후 대비라는 정당한 목적과 소비 활성화라는 당면한 과제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책적 노력이 긴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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