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공화국의 그늘①] 위조지폐ㆍ가짜 진단서…‘독버섯’ 범죄 판친다

- 위조범죄, 인구 10만명당 43건…日보다 20배 높아

- 솜방망이 처벌ㆍ국민 인식 둔화 등 원인 꼽혀 “근본적 예방 필요”

[헤럴드경제=양대근ㆍ고도예 기자] #1. 특수절도 등 전과 2범의 이모(27) 씨는 교도소 출소 이후 생활비가 부족해지자 위조지폐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 씨는 고시원의 복합기를 사용해 5만원권 15장을 위조하고 식당과 마트, 택시에서 사용했다. 위폐에는 일반 화폐의 은색 줄과 점선이 그대로 복사돼 있었고 약간의 구김도 표시해 얼핏보면 진짜 지폐와 식별이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이 씨는 한 마트에서 그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가게 주인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법원은 이 씨에 대해 통화위조ㆍ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2. 정부서울청사에 잠입해 성적 조작을 시도하다가 붙잡힌 ‘공시생’ 송모(26) 씨는 조작과 위조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다. 그는 한 대학병원에서 시력이 나쁜 것처럼 연기해 ‘양안 약시’ 진단서를 발급받은 뒤 수학능력시험과 토익,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시간 연장의 혜택을 받았다. 연장된 시간 동안 송 씨는 화장실에 가서 인터넷에 게시된 모범답안을 베꼈다. 지난해에는 아예 ‘제5요추의 척추분리증 등으로 신경차단술을 시행했다’는 취지의 가짜 진단서를 직접 만들어 학교에 6차례 제출하기도 했다. 검찰의 한 간부는 “침입과 위조에 발군의 실력을 갖고 있어 수사관으로 특채를 해도 되겠다”며 농담을 던졌다. 

대한민국 사회가 연 2~3만건에 육박하는 위조범죄로 안에서부터 병들어 가고 있다. 위조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으로 공정한 경쟁 대신에 ‘편법과 반칙’을 선택하는 사회 풍토가 저변에서 확산하고 있는 점이 꼽힌다. [사진=헤럴드경제DB]

대한민국 사회가 연 2~3만건에 육박하는 위조범죄로 안에서부터 병들어 가고 있다. 위조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으로 공정한 경쟁 대신에 ‘편법과 반칙’을 선택하는 사회 풍토가 저변에서 확산하고 있는 점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위조범죄를 줄이기 위해 강력한 처벌과 감정기술 고도화가 우선 필요하지만 청소년 예방 교육 등 근본적 대책 마련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12일 대검찰청이 최근 발간한 ‘우리나라 위조범죄의 특징과 대응방안’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 국내에서 발생한 위조범죄는 총 2만1662건으로 20여년 전인 1995년(1만318건)에 비해 2배 넘게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와 비슷한 사법체계를 지닌 일본의 경우 같은 기간 위조범죄가 9159건에서 2665건으로 급감해 대조를 이뤘다.

인구별 범죄발생률을 비교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위조범죄율’은 43건으로 일본의 2.1건에 비해 20.5배 가량 차이가 났다.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범죄 유형별 국가순위에서 한국이 사기분야 1위를 차지한 점을 감안하면 위조분야에서도 전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위조 유형별로는 문서위조가 전체 위조범죄에서 60~70% 가까이 차지하며 비중이 제일 컸다. 통화위조의 경우 2012년 8321건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였지만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3907건, 2770건이 발생했다. 반면 유가증권위조의 경우 2010년 이후 반등하기 시작해 연 800~1000건에 육박하고 있다.

이처럼 위조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주요 원인으로는 사법당국의 ‘솜방망이 처벌’과 국민들의 범죄인식 둔화 등이 지목된다. 한국의 위조범죄 기소율은 2011년에 21.1%에서 2014년 25.2%로 소폭 올랐지만 전체 형사사건의 평균 기소율(38.1%)에 크게 못미쳤다. 같은 기간 일본의 문서위조범죄 기소율은 40~65%에 달했다.

국민들 역시 위조범죄에서 느끼는 심각성이 예전보다 약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대 이상 성인 남녀 1300명을 대상으로 ‘슈퍼마켓에서 1만원(10년 전에는 5000원) 상당의 물건을 훔친 경우’를 기준점(1점)으로 해서 범죄 심각성 지수를 조사한 결과, ‘컬러복사기를 이용해 1만원권 지폐를 대량으로 위조유통시킨 경우’에 대한 범죄 심각성 지수는 10년 새 4.68에서 3.25로 낮아졌다.

김정호 대검 과학수사부 서기관(과학수사학 박사)은 “사회 공존을 위한 전제인 신뢰와 신용을 고의로 침해하는 범죄 행위에 대해 관대함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서기관은 위조범죄 근절 대책으로 ▷엄격한 처벌 ▷감정기술 고도화 ▷수준별ㆍ맞춤형 대응 강화 ▷위조범죄 통합 대응 시스템 구축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범죄 예방을 위해 청소년 등에 대한 위조범죄 예방교육 강화와 위조방지장치의 첨단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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