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의 대학가, 왜? ②] 학내 자치ㆍ복지가 최우선…캠퍼스는 지금 학생운동 3.0

-반독재 투쟁 등 정치의 시대가 학생운동 1.0

-직선제 개헌후 사회이론 투쟁 벌이는 혼란거쳐

-개인의 권리를 찾는 학생운동 3.0으로 전환돼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학생운동은 우리 역사에서 항상 변화의 최일선을 지켜왔다. 이룬 것이 적기에 잃을 것도 적은 ‘학생’이라는 신분은 개인만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방향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갖고 행동하게 했다. 그러나 당시의 고민 거리였던 정치적 문제가 어느정도 제궤도에 오른 대신 경제의 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로 등장하자 학생운동 역시 ‘내 주변의 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학생운동 3.0’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정치는 우리의 힘=이승만 독재 정권의 끝을 알리는 1960년 4.ㆍ19혁명은 마산 시위에서 실종된 김주열 군의 시신이 떠오르면서 그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4월 18일 고려대 4000여 학생이 국회의사당으로 진출했다가 학교로 돌아가던 중 정치깡패들의 습격을 받았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들이 이튿날 총궐기하면서 4ㆍ19 혁명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사건은 이후 반독재ㆍ민주항쟁의 선봉에 학생이 앞장서는 ‘학생운동 1.0’ 시대를 규정했다.

1980년은 정치 민주화와 사회 자유화를 향한 학생운동의 정점이었다. 그 계기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 당시 언론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몇장의 사진 등으로 전해진 광주의 참상은 대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고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은 대학생들을 반독재 투쟁에 몰두하게 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룬 민주화는 학생 운동의 가장 큰 역사적 성과였다. 경찰의 물고문 끝에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나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에서 보듯 한국의 민주주의는 학생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사진설명=학생운동은 4ㆍ19 혁명 이후 우리 사회를 변화시킨 가장 중요한 동력 중 하나였다. 민주화라는 성취를 이룬 학생운동은 제도권 정치로부터 개인을 위한 권리 찾기로 변화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최루탄을 맞고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 장례식.]

▶역사적 성취 뒤의 혼란=직선제 개헌 등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하자 대학생들 사이에선 이후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독재 등 우리 사회 문제의 근원이라고 본 대학생들은 공장에 위장취업해 노조를 조직했고 분단이 모순의 근본 원인이라고 본 이들은 미 문화원 방화 등 ‘반미(反美)’ 투쟁에 나섰다. 이같은 흐름은 이후 소위 PD계열(민중민주)과 NL계열(민족해방)으로 나뉘는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을 불러왔다.

전국적 규모의 대학생 조직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NL 계열로 임수경 씨를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보내는 등 각종 남북 합작 행사들을 추진하며 통일을 위한 활동들을 펼쳤다. 1993년 출범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1996년 북한에 학생대표를 파견하려던 노력이 정부의 반대에 부딪히자 한총련이 연세대를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연세대 사태가 벌어졌고 이후 한총련은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로 규정되고 만다. 이를 기점으로 1990년대부터 학생운동은 “사회의 현실적 문제를 외면한 채 이념투쟁을 벌인다”는 비판을 받으며 쇠퇴를 겪게 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2000년대 초반에는 학생 운동의 위기 속에 ‘비운동권’을 표방한 세력들이 나타났다. 이는 기존에 사회적 문제에 몰두하던 학생회 방식에서 벗어나 학내 복지와 문화적 권리를 향상하겠다는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2007년 뉴라이트대학생연합의 출범으로 이어졌고 이에 대항해 진보적 관점에서 등록금이나 청년실업 문제 등 대학사회 현안을 접근하는 한국대학생 연합(한대련)이 출범하기도 했다.

이같은 변화 뒤에는 외환위기 이후 나빠진 경제사정으로 학생들의 관심이 경제적인 부분으로 옮겨간 것이 있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1980년대 한국은 노동시장의 상황이 좋아 학생들도 자유롭게 행위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이런 기회구조가 상당히 폐쇄적으로 바뀌고 부정적인 상황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학생 운동의 흐름은 전통적 정치 이슈에서 벗어나 반값 등록금 운동이나 알바 권리 찾기 운동 등 생활 속 주제를 중심으로 짜여졌다. 여기에 성소수자나 장애인 운동 등 차별반대의 흐름도 더해졌다. 공동체의 앞날보다 개인의 행복 찾기에 집중하게 된 것.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대학생 세대는 과거보다 제도권 정치의 세례를 덜 받았지만 개인의 행복에는 더 민감해졌다”며 “최근 들어 교육권 등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됐고 강남역 사건과 같은 이슈들이 더 큰 휘발성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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