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하자품’들이 만드는 뺄셈 정치

‘분노’는 언젠가부터 만국 공용어가 됐다. 툭하면 이유로 갖다대는 것이 ‘분노’다. 대상은 자유자재로 모습이 변한다. 때로는 나보다 힘없는 ‘약자’가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일면식 하나 없는 ‘타인’이 분노의 대상이 된다.

‘꼰대’라는 비아냥 말을 듣고 사는 어른(물론 어른의 범주는 고무줄 같아서 자신보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으면 이 꼰대 레이더에 잡힌다)도 포함된다. 위선ㆍ거짓말의 대명사가 된 기성 정치인도 목록에서 빠질리 없다.

그렇고 보면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 혹은 나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이 모두 분노의 대상이다. 한국 성인의 절반이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고, 10명 중 1명은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는 충격적인 보고(대한정신건강학회)도 있을 정도다.

분노가 표출되는 방법도 다양하다.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고, ‘욱’하고 화를 참지 못하거나, 손가락질을 하며 고래고래 욕지거리를 하는 것은 그래도 애교로 봐줄 만하다. 일면식 없는 타인을 폭행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묻지마 살인’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우울한 분석도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추잡한 싸움”(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이라는 미국 대선을 분석할 때 항상 나오는 단어도 분노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막말과 성추문, ‘음담패설’에도 불구하고 굳건한 것도 ‘분노’ 때문이라고 한다. 누가됐든, 또 어떤 짓을 했든 워싱턴 D.C.라는 기성 정치에 ‘빅 엿’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이면 표를 주겠다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율’의 원동력은 ‘분노’인 셈이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주리주(州)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에서 열린 미 대선 2차 TV토론은 “가장 지저분한 대결”(뉴욕타임스)이 됐다. “가지 말아야 할 길”(워싱턴포스트)을 선택한 트럼프나 불편한 웃음을 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나 모두 ‘빅 엿을 먹이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날 TV토론 관련된 미 주요 언론의 댓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힐러리에게, 힐러리 지지자들은 트럼프에게 증오의 댓글을 달았다. 재미있는 것은 댓글 중에 “하자품”(damaged goods)이라는 표현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대선 후보들을 하자품 쯤으로 보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1 더하기 1은 2가 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이나, 영국이나 1 더하기 1을 마이너스 2로 만드는 요술을 부리는 게 정치다. 브렉시트 직후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에 대해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영국 언론들이 메이의 최근 행보에 신발만 좋아하는 그렇고 그런 정치인에 지나지 않았다고 혹평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영국의 자존심 파운드화의 몰락이 이를 증명한다. 더 나은 한국에 대한 고민, 더 나은 미국에 대한 고민, 브렉시트 이후 더 나은 영국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국민들사이에서 이간질을 하고, 국민들을 둘로 나누고, 서로에게 증오의 욕설을 퍼붓게 하는 술수가 마치 정치의 정석인냥 아무렇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분노는 하자품(?)들이 만드는 뺄셈정치를 먹고 산다. 벌거벗은 미 대선을 남의 집 불구경 하듯 보기엔 우리의 현실도 너무 화가 치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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