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 직장에서 남편 성씨 써라” 日 법원 판결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일본에서 결혼한 여성 교사는 직장에서 ‘결혼 후 성씨’를 사용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도쿄 지방법원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30대 여성 교사가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를 상대로 “‘타고난 성씨’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줬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3일 보도했다.


일본 민법 750조는 부부가 서로 다른 성을 쓰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부분(한 통계에 따르면 96%)의 일본 여성은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씨를 따라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상당수 여성들이 법을 어겨가면서 ‘타고난 성씨’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 신장 측면에서도 그렇고, 이름이 바뀔 경우 업무 연속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교사는 지난 2013년 결혼한 이후 학교 측에 ‘타고난 성씨’를 사용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학교가 받아들이지 않자 법원을 찾았다. 이미 ‘타고난 성씨’로 학생, 학부모, 교사들에게 이름이 많이 알려진데다, 책을 집필할 경우에도 이름이 달라지면 업무의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교사의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교사의 요구를 기각했다. 3명의 남성 판사들로 이뤄진 재판부는 결혼한 여성이 직장에서 ‘타고난 성씨’를 사용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는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여성노동자 70% 이상이 결혼 후에도 직장에서 남편의 성씨를 사용하고 있다는 2015년 한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기존의 관습이 사회 속에 아직 뿌리내려 있다며 관습을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각각의 개인을 식별ㆍ구별하는데 있어서 호적에 등록된(결혼 후) 성씨가 ‘타고난 성씨’보다 유용하다”라고 말했다.

재판이 끝난 후 여성 교사는 “(이번 판결은) 결혼 후 성씨를 바꾼 사람들이 불필요한 걱정없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환경을 파괴한다”라고 비판했다.

마사유키 타나무라 와세다 대학 가정법 교수 역시 사안에 대한 재판부의 이해가 부족했다며 “개인의 결정은 존중받아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일본 민법 750조는 메이지유신 시절인 19세기 도입됐다. 결혼이 개인 간의 결합이 아닌 가족 간의 결합으로 이해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생긴 법이다. 이에 10년 전 법무부가 이 조항을 폐지하려 했지만, 보수 정치인들에 의해 막혔다.

지난해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가족이 하나의 성을 쓰는 것은 합리적이며 일본 사회에 정착돼 있다”라며 해당 조항이 합헌이라고 하면서도, 부부의 성씨를 둘러싼 제도의 방향 설정은 국회에서 논의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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