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미폰 국왕 서거 이후]통곡 속 혼돈의 태국…옐로셔츠 vs 레드셔츠, 또 쿠테타?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13일(현지시간) 푸미폰 아둔야뎃(88) 태국 국왕의 서거에 태국 정치권에 파란이 예상되고 있다. 푸미폰 국왕은 지난 70년 간 태국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권력 정당성의 근원으로 자리했지만 왕위를 계승할 왕치라롱껀(64) 왕자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지는 왕치라롱껀의 승계가 “태국 앞날을 불투명하게 할 지도 모를 일”이라고 평가했다.

왕치라롱껀 왕세자에 갑작스러운 신변의 위협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차기 태국 국왕의 자리는 왕치라롱껀이 이을 전망이다. 지난 1972년 푸미폰 국왕은 왕치라롱껀 왕자를 왕세자이자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다. 태국 왕실법은 왕세자 또는 명백한 ‘남자’ 후계자가 없을 경우에만 국왕의 정치자문단인 추밀원의 추천과 의회 승인 하에 공주의 승계를 허용하고 있다. 

와치라롱껀 태국 왕세자 [사진=게티이미지]

문제는 왕실과 군부세력이 왕치라롱껀의 승계를 불편해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왕치라롱껀 왕세자가 푸미폰 국왕처럼 태국 정국의 구심점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태국 내에서는 푸미폰 국왕이 고령이 되면서부터 왕위승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왕치라롱껀 왕세자는 문란한 생활을 반복해온 탓에 국민의 폭넓은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쿠데타가 발생하기 직전에도 영국으로 피신했다는 소식에 이어 셋째 부인이자 전 왕세자비인 스리라스미와 친인척의 비리로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꺼진 상태다. 푸미폰 국왕조차 자신의 60번 째 생일 즈음 “왕세자는 명예롭지 못하며 도덕성이 부족하고, 그가 왕이 된다면 혼란이 국가를 집어삼킬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푸미폰 국왕과 5촌 지간인 쑤쿰판 방콕시장은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Spiegel)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현 국왕은 공식적으로 후계자를 뽑지 않았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여기에 1970년대 태국판 새마을 운동이라 볼 수 있는 ‘국왕 개발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마하 차끄리 시린톤(61) 공주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시린톤 공주는 태국 국민들 사이에서 ‘쁘라텝’(천사 공주님)이라 불리며 푸미폰 국왕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왕실 가족 지위권을 박탈 당한 장녀 우본랏 공주와 3녀 쭐라폰 공주와는 달리 시린톤 공주는 왕위계승서열 2위를 유지하고 있다. 

시린톤 태국 공주 (왕위 계승서열 2위)[사진=게티이미지]

태국 현지 언론도 “시린톤 공주가 해온 일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꼽기 힘들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태국 외교부는 지난 2011년 “왕치라롱껀은 1972년 이미 황태자, 즉 왕위계승자가 되었다고 공포되었으며, 따라서 (왕위승계가) 불확실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라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왕실이 공식적인 의견을 발표한 적은 없다.

여기에 두 왕자와 공주를 둘러싼 정치세력 간의 갈등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른바 ‘옐로셔츠’로 알려진 왕실ㆍ군부 지지세력은 태국의 농민과 도시빈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레드셔츠’ 세력과 적대관계에 있다. 특히 레드셔츠 세력은 지난 2006년 쿠데타로 물러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이다. 문제는 와치라롱껀 왕세자가 레드셔츠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지는 “탁신과 그의 지지세력은 왕치라롱껀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현재 추방당한 탁신을 사면하고 정계로 다시 불러들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 2014년 쿠데타 역시 탁신 전총리이자 2006년 총리직에 오른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 전 총리와 그 지지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때문에 옐로셔츠들은 왕치리롱껀의 왕위계승이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시린톤 공주가 옐로 셔츠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와치라롱껀 왕세자와 시린톤 공주를 낳은 솜뎃프라낭짜오 시리킷 왕비 때문이다. 지난 2006년과 2014년 쿠데타를 일으킨 주동자들은 모두 제2보병연대, 즉 시리킷 왕비의 경호를 담당했던 군인들이었다. 때문에 레드셔츠 세력은 시리킷 왕비가 옐로셔츠의 주축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시리킷 왕비가 지난 2008년 10월 반탁신파 시민단체인 PAD의 시위참가자 장례식장을 시린톤 공주와 함께 방문하자 레드셔츠는 이를 ‘각성의 날’이라 부르며 시리킷 왕비가 자신의 정치세력을 노골화했다고 비난했다. 당시 시린톤 공주는 옐로셔츠의 시위에 대해 “국왕이 아닌 자신들을 위해 반정부 시위를 벌인 것”이라고 밝혔지만 옐로셔츠 운동의 지도자격인 손티 림텅꾼은 미국 언론인들이 탁신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시린톤 공주의 발언을 잘못 번역했다고 주장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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