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석의 영화X정치] 정치도 ‘리콜’이 되나요?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리콜’(recall). ‘제품의 결함을 회사측이 발견하여 생산일련번호를 추적ㆍ소환하여 해당부품을 점검ㆍ교환ㆍ수리해 주는 소비자보호제도로 결함보상제, 소환수리제라고도 한다’. 인터넷에 게재된 백과사전의 설명이다.

자동차나 휴대폰에만 ‘리콜’이 있는게 아니다. 사랑도 ‘리콜’이 된다.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 존 쿠삭 주연의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2000년)가 보여줬다. ‘불량남(男)’을 대략 5차례에 거쳐 ‘수리’ 한 다음 ‘쓸만한 남자’로 거듭나게 한다는 내용이다. 사랑, 즉 남녀관계를 포함한 인간관계의 경우 대개는 ‘리콜’이 극도로 어렵고, ‘불량’은 ‘불가역적’인 경우가 많지만, 영화에선 어쨌든 ‘수리 후 재사용’에 성공했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이 영화의 원제는 원작소설인 영국 작가 닉 혼비의 ‘하이 피델리티’(High Fidelity)를 그대로 가져다 썼지만, 국내 개봉명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로 바뀌었다. 영어 타이틀과 비교하면 영 엉뚱한 제목이 됐지만, 작품 내용을 보면 꽤 재치있는 작명이라고 할만하다.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30대 남자 롭 고든(존 쿠삭 분)이 주인공이다. 뭣이든 ‘톱 5’를 매겨야 직성이 풀리는 대단한 음악광이다. 그에겐 변호사인 여자친구 로라까지 있으니 크게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다. 그런데 로라가 갑작스레 이별을 선언하고 이웃의 나이든 히피(팀 로빈스 분)에게 가버렸다. 롭 고든의 인생은 졸지에 지옥이 돼 버렸다. 그는 자신의 지나간 연애들을 회고해본다. 언제나 그랬다. 여자에게 버릇처럼 차였다. 롭 고든은 실연의 이유, 거듭되는 연애 실패의 이유를 알기 위해 자신의 인생에서 ‘톱5’의 여인들을 찾아 나선다. 그들을 통해 본 자신의 모습은 끔찍했다.

매번 상대에 의해 ‘불량 판정’을 받아 버려지는 남자가 자진 ‘리콜’ 결심을 하고 옛 연인들을 찾아 실연의 원인을 찾아내 ‘자가 수리 및 개선’에 나선다는 내용이니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라는 우리말 제목이 썩 그럴 듯하다. 원제 ‘하이 피델리티’는 주인공의 직업이 레코드숍 운영이며 그가 대단한 음악광이라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줄여서 ‘하이 파이’(hi-fi)라고 부르는 것으로, 원음에 충실한 소리의 재현을 이른다. ‘고충실도’ ‘고음질’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남녀관계에 대한 비유적 표현일 수도 있다. 

▶집권당을 ‘리콜’한 총선, 총선 결과를 ‘리콜’ 한 검찰

사랑도 리콜이 되는데, 정치는 리콜이 될까.

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된다. 최근 국내 정국은 어느 의미에서 ‘리콜’ 정국이다.

지난 13일을 기해 검찰은 현역 의원 33명을 공직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더불어민주당 16명, 새누리당 11명, 국민의당 4명, 무소속 2명이다. 이를 두고 정국 경색이 심화됐다. 야당이 ‘정치 탄압’이라고 거세게 검찰을 비판했다. 청와대가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33명 중 야당만 20명이다. 추미애 대표를 비롯해 더민주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당에서도 모두 비박(非박근혜계)이고 친박은 1명 뿐이다. 심지어 이번에 기소된 의원 명단을 보면 야당의원들의 지역구는 지난 총선에서의 여야 경합지였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여당의 압도적인 우세 지역이라는 분석도 있다. 즉 재ㆍ보궐 선거까지 감안해 여당의석 수를 늘리기 위한 청와대와 검찰의 ‘기획’이 아니냐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현재의 정국은 ‘리콜’로 치자면, 3개의 ‘리콜’ 명령이 맞부딪치고 있는 셈이다. 여소야대를 만든 지난 4ㆍ13 총선은 박근혜 정부에 내린 국민들의 ‘리콜’ 명령이다. 국정 운영 기조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행정부와 국회권력, 여와 야가 ‘협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야당의 주장에 따르자면 이번 검찰 기소는 청와대와 검찰에 의한 국회의 ‘리콜’이다. 즉 4ㆍ13 총선으로 만들어진 국회를 ‘수리해서’ 쓰겠다는 것이다. 다수인 야당이 시종 청와대와 검찰을 공격하는 정국을 더 이상 두고 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정치 탄압” “기획 수사”라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새누리당은 특히 추미애 대표를 거론하며 “야당 대표라고 성역은 없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며 근거없는 정치 공세라는 입장이다. 검찰의 공정한 수사 결과라는 것이다. 

▶박대통령ㆍ새누리당 역대 최저 20%대 지지율…국민의 ‘리콜’ 명령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최근 여론 조사 결과의 추이는 국민들의 생각이 여당과 같을 가능성을 줄인다. 한국갤럽이 지난 14일 발표한 여론조사는 박근혜 정부나 새누리당에 대한 임기 내 ‘최악’의 성적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0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전주 대비 3%포인트 하락해 역대 최저치인 26%로 집계됐다. 새누리당 지지도 또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다. 전주 대비 2%포인트 떨어진 28%다. 더불어민주당은 26%다. 지난해 평균지지도가 41%에 달했던 새누리당 지지도는 9월 두 번째 주 34%를 정점으로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게 한국 갤럽의 설명이다.

우병우 민정 수석의 각종 편ㆍ불법 의혹이나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 및 운영을 둘러싼 청와대 개입 의혹, 최순실씨 비선실세 의혹, 사드 배치 논란, 재난ㆍ재해 대책 미비 등이 대통령과 집권당의 지지율을 끌어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30%도 안되는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여론 지지도는 무엇을 뜻할까. “그대로는 사용하기 어렵다”는 국민들의 ‘리콜’ 명령이다. 수리해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국정운영이 대대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수리가 안되면 ‘교환’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정치에는 글자 그대로의 ‘리콜’도 있다. ‘국민소환’ 제도다. 이를 영어로 ‘리콜’(recall)이라고 한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 중에서 유권자들이 부적격하다고 생각하는 자를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민투표에 의해 파면시키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대상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의원까지만 해당한다. 주민소환제는 2006년 제정돼 이듬해부터 시행됐다.

할 수 있다면, ‘로 파이’(lo-fi, 저충실도, 저음질)인 정치 전체를 ‘리콜’해서 원음, 즉 국민의 소리에 충실한 ‘하이 파이’ 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게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최근 정국을 보면서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를 떠올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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