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회고록’의 정치학, 친반계ㆍ친손계…그리고 본인에게도 나쁠 것 없는 ‘한 수’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왜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향한 ‘가시’를 드러냈을까.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을 둘러싼 논란이 급격히 확산하는 가운데, 정치권의 시선이 가장 집중되는 대목이다. 그만큼 회고록의 내용에 영향을 받는 정치인이 많다는 뜻이다. 14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준비 중인 ‘잠룡’들은 더더욱 그렇다. 여야의 치열한 이념ㆍ안보대립 사이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송 전 장관도 이런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은 참여정부의 ‘2007년 유엔(UN)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과 자신을 분리하는 데 방점이 찍혔을 가능성이 크다.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 전 대표가 야권 제1의 대권주자로 발돋움한 가운데, 외교ㆍ안보를 주무기로 삼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출전한다면 이 문제가 재점화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가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의 건의를 수용해 북한의 입장을 묻고 기권 여부를 결정했다’는 송 전 장관의 폭로는 대선정국서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잠재적 화약고’였다는 이야기다. 송 전 장관은 과거 인권결의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중요한 것은 송 전 장관의 의도를 떠나 회고록이 대선전선을 재차 요동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반 총장의 ‘입국’을 고대하는 여권 내 친반(親반기문)계와, 비노ㆍ비문(非노무현ㆍ非문재인) 그룹의 핵심인 친손(親손학규)계가 이번 파동으로 회심의 웃음을 지은 주인공이다. 실제 한국갤럽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반 총장은 새누리당의 ‘텃밭’으로 분류되는 부산ㆍ울산ㆍ경남(PK) 지역에서 한 달간 10%포인트의 지지율 하락(31%→21%)을 기록했다. 반면 문 전 대표는 PK 지역에서 23%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반 총장을 추월했다. 반 총장을 정권 재창출 카드로 이용해야 하는 새누리당으로선 문 전 대표의 ‘질주’를 가로막을 계기가 절실했던 셈이다.

아직 대권주자로서는 존재감이 미미한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에게도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은 호재다. 야권의 정체성은 확고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참여정부의 일부 정책에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던 친손계가 ‘차별성’을 드러낼 기회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당시 상대적으로 반미 성향이 강한 주류 세력은 친미 균형을 강조하는 비주류 세력과 종종 의견차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송 전 장관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반 총장의 ‘직속 후배’다. 아울러 송 전 장관은 손 전 고문의 천거로 18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하기도 했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 출간과 친반계ㆍ친손계 국면 전환의 ‘오비이락’이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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