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과로사, “사내 문제 아닌 사회 문제…단기간 프로젝트 원하는 거래처도 과로의 원인”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사내 문화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의 문화에 대해서도 논의를 해줬으면 좋겠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 최대 광고기업 덴츠 사의 전 직원 A (29)씨는 18일 헤럴드경제에 이 같이 밝혔다. 과도한 업무량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같은 회사 신입사원 다카하시 마츠리(당시 24ㆍ여)의 죽음이 단순 기업 개인법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A 씨는 “덴츠는 고객으로부터 의뢰를 받으면 주어진 기한 안에 필요한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라면서 “업무를 과도하게 전가해도 된다는 일본 기업문화 전반에 문제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 경제주간지 JP프레스의 이케다 노부오 기자는 “월 초과시간 100시간은 많은 직장인이 경험하는 것”이라며 “장시간 노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기업 대부분이 ‘블랙기업’이라는 게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12월 25일 과도한 업무를 못 이겨 자살을 택한 덴츠 사의 신입사원 다카하시 마츠리(당시 24세).   [사진=ANN그룹]

다카하시가 과도한 업무량이 시달리고 있던 지난해 10월 덴츠 사는 111개 회사에 633건에 해당하는 인터넷 광고료를 과잉청구(합계 2억 3000만 엔ㆍ한화 25억 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덴츠 사에 광고를 의뢰한 업체들은 덴츠 사 측이 보고 없이 본래 광고 게재 기간보다 짧게 광고를 올리거나 의뢰기한에 맞춰 광고하지 못한 것을 문제 삼았다.

당시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한 것은 도요타 자동차로, 다카하시는 인터넷 광고 중 자동차 보험 등 광고를 담당하고 있었다. JB프레스에 따르면 당시 다카하시는 짧은 기간 안에 도요타 자동차 등 고객사가 요구한 광고 콘텐츠를 게재해야 했다. 또, 적정 광고료를 측정하는 업무도 도맡아야 했다. 다카하시는 결과적으로 지난해 10월 총 130시간을, 11월에는 99시간을 초과근무했다.

나카무라 쇼이치 덴츠 부사장은 지난 9월 과잉청구 문제에 사과하는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하면서 과다업무를 문제 삼기보다는 일손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특정 개인보다는 업무를 총괄ㆍ관리, 경영하는 입장에서의 책임이 컸다”라면서 “운용형 디지털 광고는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장르로, 항상 일손이 부족하다”라고 밝혔다. 클라이언트가 무리한 요구를 하다 보니 업무량을 과도하게 할당받은 덴츠 사 직원들 사이에서 실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라는 설명이다. 나카무라 부사장은 100~120명에 달하는 사내직원들이 광고료 책정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다고도 덧붙였다. 

과도한 업무로 자살을 택한 덴츠 사의 신입사원 다카하시(당시 24세)의 죽음이 산재로 인정된 지난 7일, 그의 모친은 “그래도 내 딸은 돌아오지 않는다”라며 사측에 사내 문화 개선을 촉구했다.   [사진=아사히 신문]

이에 외신은 일제히 “장비나 인력에 투자하기보다는 ‘과다근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라고 변명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일본 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는 “문제는 노동시간이 아니라 광고 대행사나 언론과 같은 비효율적인 시장이 도태되지 않은 채 청년들에게 비생산적인 노동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JB프레스도 “덴츠의 비생산적인 광고료 책정 구조에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일본 기업 구조 자체가 비생산적이기 때문”이라며 “비효율성을 강제하는 회사를 떠날 옵션이 없어 노동시장도 경직될 수 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카하시를 둘러싼 과로사 문제가 비단 덴츠 사 개인법인뿐만의 문제가 아닌 단시간에 과도한 업무를 요구한 클라이언트, 그리고 그러한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본에서 초과근무는 전반적인 ‘기업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지난 7일 공개된 ‘과로사 백서’에 따르면 2016년 일본 일반 직장인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1734시간으로, 1990년 2023시간보다 줄었다. 하지만, 월평균 초과 근로시간은 2016년 132시간으로, 20년 전인 1996년 115시간보다 17시간 증가했다. 1990년(156시간)보다는 초과근무 시간이 줄었지만 1996년 이후 1인당 월평균 초과 근무시간은 115~132시간 사이를 오갔다. 초과근무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이에 대해 “일의 성과보다 회사에 보내는 시간과 일에 대한 헌신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라면서 “비효율적인 노동문화와 부진한 기술을 고집한 덕분에 일본은 부유한 국가이면서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생산성이 나쁜 경제국 중 하나이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한국의 노동시간은 일본을 크게 웃돈다.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근로자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은 2113시간에 달했다. OECD 34개국 회원국 중 멕시코(2246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근로시간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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