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때 다른’ 北인권결의안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송민순 회고록’에서 논란이 된 2007년 우리 정부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을 했다. 그 전년에는 최초로 찬성을 했고 정권이 바뀐 2008년 이후 매년 찬성을 했다.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와 남북관계라는 특수성, 그리고 이에 대한 정권의 입장에 따라 결론이 바뀐 셈이다.

유엔에서의 북한인권은 크게 유엔 인권이사회(전 인권위원회)와 유엔 총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2003년 제59차 유엔 인권이사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북한인권이 처음으로 유엔에서 다뤄졌다.


2005년에는 유엔총회에서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 인권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과 압박을 한층 끌어올렸다. 북한인권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모든 회원국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구속력을 가진다.

이후 유엔 인권이사회는 2013년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설치를 결정했으며 COI는 1년간 조사활동을 마치고 이듬해 2월 북한인권 침해가 상당 부분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당사국으로서 북한 인권 문제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2003년 첫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당시 노무현 정부는 ‘불참’을 결정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포석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과 2005년에는 기권 결정했다. 2005년 유엔총회 차원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될 때도 노무현 정부는 기권을 선택했다.

처음으로 우리 정부가 찬성표를 던진 건 2006년 11월 유엔 총회 때였다. 당시 한 달 전 벌어진 북한의 제1차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비난 여론이 급증한데 따른 결정이었다.

‘송민순 회고록’에서 논란이 된 2007년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는 남북관계 및 북핵문제가 다소 복잡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불과 한 달 전에 있었고 북핵 6자회담도 진전을 보인 상황이었다. 이미 전년에 찬성을 한 만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과 상황변화에 따른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논리가 맞붙은 끝에 다시 기권을 선택했다는 게 당시를 기억하는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남북관계 악화 등으로 줄곧 찬성표를 던지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2008년부터는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는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6월 서울에 북한인권 사무소를 설치한 것을 비롯해, 북한인권법 발표 및 그에 따른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임명 등 북한인권 문제에 적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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